소름이 끼칠 정도로 생생하다....★★★★
<클래스>는 프랑스 파리 교외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한 줄이 이 영화 스토리에 대한 모든 정보다. 그 학급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사건들은 표현만 다를 뿐 아마도 거의 모든 이가 경험했던 또는 경험하고 있는 사건들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또는 이것은 단지 학급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단면이기도 하다.
2008년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클래스>는 다큐멘터리적 극영화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물의 근접거리에서 끈질기게 따라 붙고, 몇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들을 짧게 이어 붙임으로서 스크린은 생동감으로 넘실댄다. 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학급, 그러니깐 뒤 또는 앞에서 학급 전체를 조망하며 선생과 학생을 한 화면에서 모두 담아내는 그런 식의 흔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연신 선생과 학생의 얼굴을 번갈아 담아낸다. 마치 선생과 학생들(!)의 일대다 관계가 아니라,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관계가 학급의 본질적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단지 촬영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의해서만 다큐멘터리적 느낌이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클래스>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프랑수아 베고도가 영화의 주인공 마랭 선생역을 맡았고, 촬영 장소로 선택된 중학교의 교사들이 그대로 교사로 출연했으며, 그곳의 학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학생을 연기하게 함으로서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생동감과 현실감을 담보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말하자면, <클래스>의 로랑 캉테 감독은 구체적인 시나리오 대신 어떠한 상황만을 부여함으로서 학생들이 평소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극을 이끌어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현실과 연기가 구분되지 않은 생생함으로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유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클래스>의 학급은 여러 인종들이 모인 전형적인 다문화 학급이며, 그것도 주로는 가난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급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진행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떠들며, 선생의 말에 대꾸하기 일쑤고, 심지어 프랑스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쓰거나 읽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급에서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에 대처하는 교사의 자세는 어떨까? 학생들의 계속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마랭은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자.. 이렇게까지 얘기가 되면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교사의 노력으로 학생들이 변화되고 그래서 훈훈하고 감동적인 엔딩으로 가는 수많은 영화들. 그러나 <클래스>는 헐리웃 영화적인 그런 진행을 거부한다.
내내 반항의 기운을 물씬 풍기던 술래이만은 마랭의 칭찬에 조금 변화의 기미를 보이는 듯하지만, 이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아니 오히려 반항은 더 심해지며, 급기야 수업 시간 도중 교실을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의 얼굴에 상처까지 남긴다. 이때부터 영화는 급물살을 타듯 파국으로 돌진한다. 술래이만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마랭은 홧김에 해서는 안 될 말을 아이들에게 내뱉고 아이들은 이에 집단적으로 반발한다.
그래서? 파국은 오는가? 마랭은 마랭대로 수업에 들어오고, 또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수업에 들어온다. 파국은? 현실에서 그러한 파국이 존재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헤피엔딩이나 파국은 그저 영화의 시나리오에만 존재할 뿐이다. 한 학생이 퇴학당하고 아프리카로 쫓겨 간다고 해서 또는 교사가 실수로 심한 말을 학생들에게 했다고 해서 그 학교가 문을 닫을 일도 없고, 교사가 그만 둘 일도 없으며, 심지어 학교 측의 처사에 반발하던 학생이 학교를 스스로 떠날 일도 없다. 수업은 그전 그 모습 그대로 진행된다.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현실이다.
※ <클래스>를 보면서 놀랐던 점으로는 첫 번째,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교사나 학교 측에 의한 강압적 체벌이 시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학교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이 높은 성적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에 관한 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학생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학교, 교사, 학생 대표가 모여 평가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분명한 자기 생각과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이 나름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특수성이 현재의 교육 제도의 특징으로 귀결되었겠지만, 어쨌거나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로서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
※ 대학로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클래스>를 관람하였다. 예매한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웬 남녀 고등학생들이 바글바글이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교사 몇 명이 학생들과 함께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심히 걱정이 되었다. 하필 내가 보는 시간에. 아니다 다를까. 영화가 약 1/3 지점에 다다르자 학생들의 동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냥 밖으로 나가는 학생은 그나마 고마웠다. 속닥거리는 잡담들이 모여 꽤 시끄러웠다. 화면에선 프랑스 학생들이 떠들어 대고, 현실에선 객석의 학생들이 떠들어 대고. 분위기로만 보면 거의 4D 극장에서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와 현실의 완벽한 조우.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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