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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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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3 오전 3:5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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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빔 벤더스 등과 더불어 독일영화의 중흥을 알린 1960년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는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못한 감독이다.
그의 1972년작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는 조셉 콘라드의 소설 'Heart Of Darkness(암흑의 핵심)', 그리고 소설을 모티프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과 매우 흡사하다.
또, 헤어조크의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극한 상황의 설정, 광기어린 인물, 극단적인 목표, 상식을 벗어난 로케이션….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실화에 바탕했다.
고립된 오지, 무엇인가를 찾으러 떠난 이들이 진정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인간 심연에 숨은 악마적 본성이다.
영화는 1560년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던 스페인 군대의 실패담을 통해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남미 정글을 탐사하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사투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 피사로는 정글에 갇히자 엘도라도로 가는 길을 찾는 선발대를 뽑는다.
그러나 선발대장 우르수아와 40명의 병사와 노예는 흙탕물 아마존강이란 거대한 장애물에 부닥친다.
황금의 땅은 고사하고 그들은 강을 제대로 건너지도 못한 것이다.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더 이상 탐험이 어렵게 되자 우르수아는 되돌아갈 것을 명령하지만, 부대장인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는 우르수아를 가두고 스페인 국왕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나는 신의 분노다"라며.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쓰러지고, 보이지 않는 식인종들은 육지에서 강쪽으로 독화살을 쏘아댄다.
우르수와의 아내와 딸이 탄 가마를 둘러멘 노예들, 자신의 갑옷 무게도 감당 못하는 병사들의 힘겨운 걸음걸이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 영화는 광기에 사로잡힌 권력의 패망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처음으로 받은 돈을 꼭 쥐고 죽은 노예, 식인종 마을에서 바닥에 떨어진 소금을 개처럼 핥아먹는 병사들, 혁명군에 의해 임시 왕으로 선출된 귀족의 거만, 그리고 모두들 죽어간 뗏목 위에 마치 점령군처럼 들이닥친 원숭이떼.
이를 통해 헤어조크 감독은 굶주림에 지친 인간상과 그것을 제도로 고착화하는 인간의 권력욕을 낮은 목소리로 드러낸다.
효과음 없이 정적만이 감도는 화면이 인간의 욕망과 이를 비웃는 자연을 드러낼 뿐.
'아귀레…'는 먼저 인간의 무리가 형성하기 마련인 정치질서를 비웃는다.
반란을 일으킨 아귀레는 스페인 황실에 맞서 귀족 혈통의 사내를 엘도라도 황제로 임명하며 "황제의 자리란 게 별건가, 판자 위에 벨벳을 깐 거지!"라고 중얼거린다.
다음으로 '아귀레…'는 서구 제국주의에 격렬한 야유를 보낸다.
아마존 한가운데서 스페인 황제 필리페 2세의 폐위를 선언한 아귀레는 아마존을 따라 흐르며 스페인 영토의 여섯 배에 이르는 땅을 엘도라도 황제의 영토로 선포하지만, 원주민의 맹렬한 공격 때문에 막상 발을 디디고 설 땅은 한 뼘도 되지 않는다.
원주민에게 일방적인 설교를 늘어놓다 그를 신성모독 죄목으로 살해하는 장면도 유럽중심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풍자로 읽을 수 있다.
'아귀레…'는 인간이 좇는 꿈의 실체를 차갑게 보여준다.
스스로를 신의 분노라 부르는 아귀레, 또는 클라우스 킨스키는 '꿈의 실현을 위해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는 헤어초크적 인물의 원형이다.
엘도라도의 꿈을 좇는 아귀레의 광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로케이션을 강행해온 감독 자신의 광기이기도 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의 원형이라 일컬어지는 '아귀레…'는 지난 500년 동안 서구문화의 물질적 바탕을 제공한 식민주의의 광기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본다.
원주민의 습격으로 부하와 혈육을 모두 잃어버린 채 원숭이 무리에 둘러싸인 아귀레의 절규는 지난 세기 서구인이 만들어낸 영상 가운데 가장 처절한 자기성찰일 것같다.
영화는 불협화음을 연속해서 들려줌으로써 신경을 자극해 자백을 받아내는 고문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마성이 발현되는, 그 징그럽고 처참한 광경을 건조하면서 생생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돕는 것은 고요함이다.
여백이 의도적으로 과다하게 남겨졌을 때 더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영화는 정적을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별다른 효과음 없이 관객의 눈 앞에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비극은 지루함을 넘어 팽팽히 당겨진 활과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과 만날 수 있다.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절대적 자유와 욕망, 탐욕과 배반이라는 원형질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72년 작인 이 작품의 스타일은 지금 눈으로 보면 꽤 낡은 듯이 보인다.
음악도 단조롭고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구성도 평이하다.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산과 아마존의 거센 물살 속에서 찍은 화면은 당시에는 웅장했을지 몰라도 요즘 관객의 세련된 눈을 사로잡기에는 밋밋하다.
그럼에도 아귀레역을 맡은 클라우스 킨스키의 깊고 푸른 눈이 관객을 압도하는 이 영화는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유효한 '인간 탐구의 드라마'로서 별 손색이 없다.
영화 막바지, 아귀레 혼자 남고 원숭이떼가 끽끽거리며 녹슨 대포 옆을 맴도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원숭이는 끝을 모르고 치달은 아귀레의 광증으로 인해 자취를 감춘 인간성과 그 잔해의 참담함을 가리키는 상징물이다.
아귀레를 연기한 클라우스 킨스키는 아귀레가 단순히 과대망상증 정신병자가 아니라 순수함의 극단을 추구한 투쟁적 인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당시 영화 촬영은 악전고투의 현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헬기 음향과 아마존의 정적(靜寂)을 비교하며, 극한 소음과 극도의 고요, 이 모두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랜도가 그랬듯 열악한 환경에 화가 난 클라우스 킨스키(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안 듣겠다"고 난동을 부렸고, 그러자 헤어조크 감독은 총을 겨누고 "영화 안 찍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다는 것.
불 같은 성격의 두 사람은 10년 후 아마존 정글 속으로 배를 끌고 올라가는 기괴한 발상의 영화 '피츠카랄도'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었고, 헤어조크 감독은 99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적- 클라우스 킨스키(91년 사망)'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가장 친한 앙숙에게 바치기도 했다.
과도한 폭력장면이 없어 12세 관람가이지만 청소년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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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레, 신의 분노(1972, Aguirre, Der Zorn Gottes)
제작사 : Werner Herzog Filmproduktion / 배급사 : (주)영화사 백두대간
수입사 : (주)영화사 백두대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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