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역작 <8월의 크리스마스>가 제작된지도 10년이 지난 듯 싶다.
이 작품으로 단번에 멜로 영화의 기대주로 떠오른 허진호 감독은 이후 다작을 하기보다 감수성 있는 작품들을 심혈을 기울여 발표해 왔다.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2년만에 다시 살포시 내민 작품이 <호우시절>이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감독 중 한 분의 작품이라 자못 기대가 컸다. <8월의..>이후로 다소 기대치를 밑도는 작품으로 약간의 실망감을 갖고 있던 터라 지나친 기대는 자제하고 조심스레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허진호 감독 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
정우성과 고원원... 그리고 중국 현지 지점장으로 나오는 김상호까지 해서 출연진은 단촐했다.
스토리 역시 우연히 만나게 된 옛 친구, 그리고 금방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며 인연을 이어가려고 하나, 아픈 과거의 상처가 현실을 옥죔으로써 그들의 만남이 위기를 맞고,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둘의 사랑이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멜로의 전형이고 신파와 다름 아닌 스토리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게 이 영화를 평하기엔 영화가 담고 있는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들의 언어가 예쁘다. 한국과 중국을 국적으로 한 한쌍의 연인이 제3의 언어인 영어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어색한 감이 없는건 아니지만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고원원이라는 배우가 매력있다. 허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고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던 그녀는 영화에서 꽃처럼 아름답고 불꽃처럼 빛이 난다.
정우성... <똥개>에서 처음으로 연기자 정우성을 보게 된 후 <놈놈놈>에서 매력을 느꼈고, 이 영화에서 팬이 되어 버렸다. 타고난 외모는 신이 내린 선물이지만 한층 깊어진 그의 자연스런 연기를 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다.
이 영화는 짧다. 스토리도 단순하다. 그러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흘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울림이 큰 영화다. <8월의..>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그 감정이 되살아 난 것이다.
잔영이 오래가는 영화다. 각박하고 매마른 현실에서 동화같은 러브스토리를 만난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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