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살육은 이제 그만! ★★★★
돌고래하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 만화가 하나 있다. 제목이 뭔지, 작가가 누군지, 전체적인 스토리가 어떠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오직 단 한 컷만이 인상에 깊게 남아 있다. 그건 돌고래가 각종 무기를 지닌 채 육지로 올라와 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지구에서 인간과 맞설 수 있는 고등동물은 돌고래가 유일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만큼 돌고래의 지능지수가 높다는 의미였으리라.
당시에도 밝혀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돌고래는 인간처럼 자살을 하고, 동성애가 있으며, 다른 개체와 구분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물론 이 영화가 돌고래의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죽이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명이나 소중한 것이고, 특히 무의미하고 무분별한 살육 행위만은 중단하자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한 없이 평화스러워 보이는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 타이지. 타이지는 곳곳에 돌고래들의 모형이 장식하고 있고, 돌고래 박물관도 있는 만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돌고래의 낙원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매년 9월부터 돌고래 살육이 자행되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 한 마을에 가니 마을 입구에 커다란 곰의 동상이 서 있었다. 속으로 ‘아마 곰이 이 마을의 상징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그곳은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빨대를 꽂아 웅담을 빼내는 악명 높은 곰 사육장이 있던 곳이었다. 대게의 경우가 이렇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릭 오배리. 그는 지구 최초의 돌고래 조련사였다. TV 드라마 <플리퍼>에 자신이 조련시킨 돌고래들이 등장해 최고의 인기와 돈을 벌게 됐지만, 돌고래의 자살 장면을 목격한 후 모든 사회생활을 중단하고 수십 년 동안 돌고래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살육을 막기 위해 수십 번의 연행과 추방도 꺼리지 않고 활동하는 중이다. 릭은 돌고래들의 수난이 모두 자신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으로 인해 돌고래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여기저기 돌고래 쇼가 열리게 되고, 돌고래의 수요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돌고래들은 스트레스에 고통 받고 자살하고 죽어나간다.
타이지의 작은 만에서 돌고래들의 살육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어부들은 돌고래가 음파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파이프를 두드려 소리를 내서 돌고래들을 작은 만으로 몰아넣고는 그물로 막는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동물원으로 팔려 나갈 돌고래들을 고르기 시작한다. 가장 선호가 높은 돌고래는 <플리퍼>에 등장했던 돌고래와 동일한 종이다. 선택 받지 못한 나머지 돌고래들은 풀려나는 것일까? 잠깐 동안의 착각은 곧 무너진다. 수천 마리의 돌고래들이 흘리는 피로 한적한 타이지의 바다는 붉은 피로 물들어 간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은 철저하게 감춰져 왔다. 영화 <더 코브>는 타이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돌고래 살육 현장을 몰래 찍어 공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거운 주제는 자칫 영화 자체의 무거움을 유발함으로서 대중적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지만, <더 코브>는 마치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재미를 안겨다 준다. 어부, 공무원, 경찰들까지 나서서 릭 오배리 등 일행의 촬영을 방해하지만, 이들은 온갖 첨단 장비와 뜻에 공조하는 전문가들을 모아 결국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촬영된 영상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다. 온통 핏빛으로 물든 바다. 수천 킬로 밖에서도 음파로 서로 소통한다는 신비의 동물, 돌고래는 그저 인간의 탐욕을 위해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죽어가고 있었다.
가끔 이런 얘기에 대해 타이지 어민들의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거냐는 식의 반론을 들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돌고래 포획이 타이지 어민들의 오랜 전통도 아니거니와 돌고래 포획을 중단한다면 그게 합당한 금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동물단체의 제안도 거절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일종의 일본의 국수적 고집이 내재되어 있음을 영화는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국민들도 모른 채 돌고래 고기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의아해한다. 돌고래를 잡아서 어디에 쓸 것인가? 돌고래 고기 먹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DNA 검사에 의하면 일본 시중에 유통되는 고래 고기 중 일부는 표기와 다르게 저렴한 돌고래 고기가 들어 있으며, 더욱 충격적인 건 허용치의 20배가 넘는 수은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수은 중독이 초래한 미나마타병으로 인해 큰 사회적 곤욕을 치렀던 일본이 수은으로 중독된 돌고래 고기를 몰래 유통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영화를 보고는 절대로 돌고래 쇼장에 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고래 쇼를 직접 구경하지 않았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더불어 사실 대부분의 동물 쇼가 마찬가지란 생각에 까지 이른다. 태국의 코끼리 쇼는 날카로운 흉기로 코끼리의 몸과 귀를 찌르며 코끼리의 공포로 가능한 쇼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돌고래 쇼장에 가지 않는 것 말고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릭 오배리의 말 한 마디가 그나마 용기를 준다. “개인의 열정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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