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루 더 있다 갈까?'...
<호우시절>의 명 대사가 흐른 뒤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에 끌려 호텔로 향하기 무섭게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사랑을 나눕니다. 남자는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지만 여자는 왠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이상한 기운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시간을 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아쉬운 베드신은 끝이 나지요. 이 영화에 백미인 이 장면은 뭔가 자극적인 애정행각을 기대하게 하기 보다는 예전에 사랑하던 연인이 오랜만에 우연히 재회하여 다시금 그들의 사랑이 남아있음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들의 처음 만남은 어색한 반가움에서 시작합니다. 귀에 익은 그녀의 목소리에 쫓아 간 곳에서 첫 눈에 그녀임을 알아 본 동하(정우성)는 그렇게 메이(고원원)를 만납니다. 지난 시간이 말해 주듯 그들의 대화는 어색한 정적이 감돌기도 하지만 서로의 옛 추억을 꺼내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 각자 생각하는 과거는 달랐지만 잊고 있던 추억들은 그들의 사랑을 조금씩 확인시켜 주지요. 짧은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동하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메이는 동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 그들간에 기억하는 내용이 다른 것처럼 애매한 사랑이 호텔에서 밀회 뒤에는 서로 확인한 마음을 통해 조금씩 구체화되어가기 시작합니다.
<호우시절>은 잊은 채로 지내며 잊었던 단편적 기억을 다시 만남을 통해 조금씩 사랑을 구체화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국의 음식에 얽힌 일화 (가령 돼지 내장탕면) 나 공원 풍경과 잘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처럼 전개됩니다. 사랑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관객들이 궁금해했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지면서 그들의 사랑은 위기를 맞습니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영화는 시작때처럼 구체적인 장면이나 대사로 결말을 알려주기 보다는 암시와 비유를 통해 우회적인 해피엔드를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고르다 보면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제목이나 주인공 혹은 감독의 이름만으로 어떨 것이다라는 섣부른 판단을 미리 해 버려 가슴을 열고 영화를 보기 보다 자신의 이미 생각했던 작품의 예상을 짜맞춰 가며 합리화시키죠... 저에게 <호우시절>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정우성에 초점이 맞춰진 전형적인 '로맨틱 가이' 식 이야기가 전부일 그저 그런 영화란 선입견...
만약 그런 생각만으로 <호우시절>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것을 놓쳤다고 후회가 될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전개에 불필요한 부분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든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돋보입니다. 영화 중간 중간 보이는 장면들은 후반부 중요한 사건에 연관이 있고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시키는 물건은 후반부 중요한 암시를 남깁니다. 거기에 지사장 (박상호)의 연기는 진지함 속에 휴식같은 감칠맛을 더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바라는 해피엔드의 결말도 좋구요. 이전까지 허진호 감독 작품의 결말과는 다른 행복을 암시하는 마지막 결말은 베드씬의 아쉬움을 채워주고도 남는 결말로 관객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합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두보의 시가 다시 맺어 준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진부한 사랑 이야기 혹은 잘 생긴 주인공을 앞세운 그저 그런 이야기라는 편견을 뒤 엎고 행복한 사랑을 선사해 줍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사랑하고 싶어지는 이 가을에,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을 꿈꾸는 분들께 정말 어울릴 영화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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