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만세
꽤나 늦은 글쓰기다. 이 영화를 본건 벌써 몇달이 지났는데 과연 지금 그때의 그 감동을 고스란히 되새김질 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지만 올해가 가기전에 이 사랑스러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서 몇자 끄적거리려고 한다.
<죠의 아파트>에서도 바퀴벌레는 싫던데 여기선 귀엽다;ㅎ
작년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본적이 있다. 포브스 라는 경제 잡지에서 올해의 영화를 뽑았는데, 진정한 올해의 영화란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한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뽑힌 1위의 영화가 바로 픽사의 <라따뚜이>였다.( http://ruliweb.empas.com/ruliboard/read.htm?main=hb&num=27865&table=hb_news>) 작년 훈련소 첫 휴가때 난 이 영화를 버리고 그때 최고의 화제작인 <디워>를 보았다. 젠장. 생각해보면 <니모를 찾아서>부터 <인크레더블>까지 픽사의 작품들에 크게 실망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항상 일정 수준의 완성도와 재미를 보장한달까? 픽사엔 왠지 신뢰가 갔다. 그 라따뚜이의 다음작품이 바로 <월-e> 인 것이다.
영화속 가장 따뜻한 마법과 같은 순간
작년 최고의 찬사와 굉장한 흥행을 겸비하고 친구의 표현대로라면 "무조건 봐야하는 영화" 라는 <라따뚜이> 다음 작품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으로 1년을 보냈다면 물론 거짓말.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픽사의 작품에는 묘한 신뢰감이 있어서 개봉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기대작에 오르고 개봉하게되면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관성적으로 보게되는 마력이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공개 즉시 <라따뚜이>를 뛰어넘는 평단의 극찬과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3D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날로그적 감성이 가득한 따뜻한 영화"란다. '그래. 닥치고 보러가자.'
내님은 어디에
영화가 시작되면 황폐화된 지구의 어떤 도시를 보여준다. '저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던 도시가 저렇게 황폐화되어버리다니.'하며 혀를 찰때쯤 자세히 보니 그 건물들은 고철덩이로 만든 어떤 '건축물'이다. 그 바로 뒤에 왠 작은 로봇하나가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여기가 좋을까? 아니다. 여기가 좋겠다. 후훗.' 하며 고철덩이를 쌓아올리는걸 보여준다. 그뒤로 한 30분간 대사하나 없이 그 깡통로봇 하나의 혼자놀기를 보여준다. 녀석의 이름은 영화 제목 월-E(이하 워리) 란다. '휴.. 녀석. 오랜시간 심심했나보구나.' 심심하다는건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 로봇의 외로움(이란게 가능하다면)을 이리도 멋지고 재기발랄하게 표현했을까. 오프닝 시퀀스만 뚝 떼어다가 픽사가 자랑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이라고 내놓아도 믿을만큼 이 오프닝은 너무나 멋졌다. 너무나 심심해 몇백년간 고철로 도시를 만들고 아이팟으로 고전 뮤지컬을 틀고 사랑을 고파하는 이 녀석에게 어느날 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난다. 녀석의 이름은 이브. 딱봐도 도도한 그녀는 처음엔 워리를 밀어내지만 결국 그 둘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서 결실을 맺는다. 라는게 이 영화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이야기 일 것이다. 외로운 오타쿠앞에 나타난 최첨단으로 무장한 도도한 그녀. 딱봐도 뻔한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순한 줄기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워리가 할수있는 말(?) 이라기 보단 감정표현을 하기 위해 낼수있는 소리는 "워~~~리~~~"라는 떨리는 기계음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할수 있는 말이란게 자신의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그건 이브 또한 마찬가지다. 이 둘은 자신이 만들어진 이래로 누구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리었을까'. 이름이란 그 존재의 증명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김춘수의 <꽃>을 인용하지 않아도 강아지, 고양이, 심지어 오토바이에도 이름을 지어주는 우리들에게 이름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감정을 지닌 로봇이다. 이 둘이 가장 처음하는 말이자 영화내내 주고받는 말은 이름뿐이다. 그렇게 둘은 같은 이름의 수많은 로봇들 가운데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오타쿠앞에 나타난 도도한 그녀의 로맨스로 이렇게 낭만적이고 멋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로봇'으로!
또 이 영화는 지독한 발전만을 추구하며 끝없이 최첨단을 향해 달리는 사회에 대한 일갈마저 날려주고 있다. 영화는 워리와 이브의 러브스토리와 함께 엑시온이라는 함선의 지구 귀환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다. 이브가 지구에 와서 워리를 만나게 된 것도 이브가 식물탐사로봇이기 때문이다. 황폐할대로 황폐해지자 인간은 더이상 어떤 생물체도 살수 없는 지구를 떠나 제 2의 노아의 방주, 최첨단 우주선인 야마토, 아니 엑시온에 타 끊임없이 지구를 유영한다. 함선을 만든 제작자는 언젠간 지구에 생명체가 살수있는 여건이 된다면 지구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워놓는다. 하지만 이브가 식물을 찾아오자 엑시온의 메인 컴퓨터는 지금이 훨씬 더 윤택한 삶이라며 계획을 돌리려고 한다. 뭐 이것또한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핵심은 엑시온 안에서 보여지는 풍경들이다. 둥둥 떠다니는 컴퓨터 의자에 앉아 모든 생활은 의자안에서만 해결하고 씻기, 대화하기, 놀기 등의 행동들도 명령하나면 끝나거나 컴퓨터로 모든것들 해결한다. 세세한 묘사들까지 말하면 영화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기에 부디 영화속에서 그 빛나는 묘사들을 확인하길. 그림체와 화법탓에 꽤나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살풍경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환경에 대한 경고와 모든 소통을 컴퓨터로만 하는 인간들에 미래. 가슴 따뜻해지는 러브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이런 주제의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니 더이상 어떤 찬사를 덧붙여야 할까.
게다가 엔딩 크레딧마저 너무나 센스가 넘친다. 뭐 어찌어찌하여 결국 지구로 돌아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유인원 도구활용과도 같은 거룩한 첫 걸음이후 다시 새로운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 에필로그를 크레딧 도중에 벽화로 현하였다. 로봇과 함께하는 새로운 인류의 기원을 크레딧 도중에 벽화로 보여주다니. 으아아아아. 마지막까지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게다가 로봇의 사랑으로 인해 인류문명의 기원이 이루어 지다니. 와우. 놀라운 세상.
워리를 보고있자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건 녀석이 사랑도 하고 외로움도 느끼고 귀여운짓도 하는, 소위 '인간같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녀석 자체가 그냥 따뜻하기 때문이다. 전무후무할 '따뜻한 로봇' 워리는 양미숙과 더불어 올해의 케릭터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을 보니 드림웍스는 성인도 볼수있는 애니메이션, 픽사는 애들용 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개봉시기를 방학이나 어린이날에 맞춘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흥행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분석을 본적이 있다. 뭐 그렇게 큰 영향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실제로 애들용같다고 안본 내 친구들이 꽤 많은걸 보면 마케팅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뭐 여튼 쓰다보니 다시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히려 겨울시즌에 개봉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그냥 무조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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