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 세계를 통해 바라본 일상의 따뜻함...★★★☆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첫 작품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중 내 가슴을 가장 애잔하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누구 말대로 내 안에도 여고생이 사는가. 실사 영화라면 <엘리펀트>가,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파란 하늘이 떠오를 만큼, 그 영화는 청명함을 느끼게 한다. 나긋나긋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까지.
두 번째 작품인 <썸머워즈>는 분명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미치지 못한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유려함도 그렇고, 가슴을 적시는 애잔함도 적다. 사실 어느 정도는 좀 억지로 밀어 넣는다는 느낌도 있고. 그럼에도 이야기의 외화인 표현의 따뜻함이랄지,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감상적이고 일상적인 느낌은 분명 전작의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이야기는 사이버 가상세계인 ‘OZ’(이름 때문인지 오프닝 타이틀에 보니 LG 텔레콤이 수입과 배급에 관여되어 있는 듯하다)의 보안 알바를 하던 천재 수학 소년 겐지가 짝사랑하는 여자선배 나츠키의 부탁으로 함께 시골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나츠키는 할머니의 90세 생일을 맞이해서 자신의 남자친구인 척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 부탁을 수락한 겐지는 대가족 틈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그러나 겐지가 핸드폰으로 날아온 문자로 된 암호에 답을 하면서 가상세계 OZ는 물론 현실 세계까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고, 겐지 자신은 해커로 지목된다.
사실 가상세계 OZ와 현실세계의 위기를 제외하고 본다면, 이 얘기는 가족 간의 유대, 화합,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 및 성장드라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감상적, 일상적 얘기를 정반대의 이미지인 최첨단 SF적 세계와의 결합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세계의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역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소녀의 사랑과 성장으로 외화시켜 냈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썸머워즈>에서 OZ라는 거대 네트워크의 혼란과 그로 인한 현실 세계의 위기는 마치 <다이하드 4.0>에서의 대규모 디지털 테러를 연상시키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과 이를 표현하는 형식은 다분히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초가을, 시골 마루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시끌벅적,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한가한 농담에 가깝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화합과 연대, 그리고 용서가 이루어지고, 명절 때면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놀던 놀이가 혼란을 수습하는 결정적 무기가 된다. 그리고 가끔 화면은 시골집 내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길게 훑으며 보여준다.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니. 거기에 살짝 손이 닿을 듯 말 듯 앉아 있는 겐지와 나츠키의 모습은 <썸머워즈>를 대표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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