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싶어서 선택했던 이 영화는 나에게 위로를 안겨주었다. 아마 위로는 나뿐만이 아니였을 지도 모르겠다. 김씨(정재영)의 모습에서 웃음만 발견했다면 그것도 위로가 될 것이고, 김씨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정말로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우리 모두는 현재를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항상 꿈꾸니까.
해학의 묘미가 물씬 풍긴다. 상냥한 듯하지만 김씨의 대출금잔액을 확인해주는 대부업직원의 전화목소리는 우리가 매일 사회생활속에서 겪는 일상이다. 김씨처럼 해결못할만큼의 큰 대출금은 아니더라고 그 대출금만큼 무거운 고민을 양쪽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것이 우리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매일매일 한강에 투신한 김씨처럼 세상을 등져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밤섬에 표류해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던 물에 대한 공포로 제대로 탈출시도조차 못하는 김씨의 모습은 현재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용기가 없어 제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도망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못된 것보다 무능이 더 죄라고 말하는 여자친구와 스펙이 이것밖에 안되냐는 회사면접의 모습은 씁쓸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가 싫어하는 현실이지만, 나조차 요구하게 되는 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죽는 것은 나중에 할 수 있다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그는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절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점점 자신이 똑똑해져간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만들어 낸다. 적응일까? 생존을 위한 적응일까? 그 기발한 생각은 갑자기 똑똑해져서 튀어나온 생각들일까? 좌절하고 화도 내지만 다시 도전하는 그에게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기회라는 것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서울아래 밤섬이라는 제한된 장소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고민할 수 있었다. 그에게 심심함은 그의 생각을 자극시켰고, 그는 마음껏 고민했으며 마음껏 도전하고 마음껏 이루었다. 사회에서 주지 않은 기회를 그는 그 스스로가 발견하고 즐겼던 것이다. 이 점이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이다. 점점 발전하고 발견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그의 모습.
3년째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그녀(정려원)이 카메라로 그(정재영)을 관찰하면서 이 영화는 흥미진해진다. 외로움에 지쳐있다가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진 그들이 서로 메세지를 주고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점점 미소를 짓기 시작했고, 그는 그녀를 점점 기다리기 시작했다. 사람간의 관계, 인간은 결코 혼자보다 둘 이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까? 그녀는 그를 관찰하면서 자신을 숨기려고만 했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짜장면!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다. 그가 발견한 짜파게티 봉지는 인생에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짜파게티 스프는 인생의 목표를 항해 가는 밑거름, 옷갖 풀들로 면을 만드는 도전들은 아마도 매일매일 실패를 겪는 우리들의 삶, 새들의 똥을 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해내는 장면은 한 사람의 인생에 3번 온다는 기회가 아니였을까? 그 기회를 잘잡고 노력하는 그가 결국 이룩해 낸 것은 짜장면이 아닌 인생의 목표달성이다. 짜장면의 눈물은 아무나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녀가 배달시켜준 짜장면의 유혹도 뿌리치며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그의 노력이 일구어낸 눈물이다.
비바람..
그가 힘들게 일구어 놓은 세계를 파괴시킨 것!
순식간에 그의 집과 그가 키웠던 작물들을 쓸어가 버렸다. 그는 외쳤다. 이것도 안되냐고. 이 정도도 허락할 수 없는 것이냐고. 세상은 꼭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나도 한순간에 내 모든 것이 그렇게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가 이룬 짜장면 같은 희망을 다시 생각할 수 이을까?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들이었다.
만남
그녀는 3~4년만에 낮에 외출을 감행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밤섬에서 쫓겨난 그는 확실히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63빌딩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밤섬에 생활하면서도 가지고 있었던 지갑의 카드로 버스비를 낸다. 카드가 인식된다. 새삼스럽다. 아직도 세상이 그를 기억해준 것인지, 몇개월만의 무인도 생활에서 너무 빨리 벗어나버린 자신을 향한 것인지 그는 한숨같은 웃음을 날린다.
그녀는 그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버스는 그녀를 보지 못하고 출발하고야 만다. 버스를 놓친 그녀는 그저 울고만 있다.
사이렌이 울린다. 일년에 두번 있다는 민방위 훈련. 모든 차들은 다 정지하는 20분이라는 순간,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그 순간이 지금 바로 다가왔다. 사람이 살면서 다가오는 두번째 기회일까? 그녀는 정신없이 버스에 타고 그에게 다가갔다. 마주하고 있는 둘은 우는 것일까? 웃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영화 뒷 이야기를 시처럼 구름처럼 내비친다. 모든 사람에게 꼭 온다는 기회의 세번째 가 기대된다. 밤섬에서 한 때 그의 집이였던 오리배가 비바람에 떠내려갔으나 결국 바다에 도착했듯이 그들에게도 바다같은 사람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바다같은 사람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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