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나와 곽재용은 잘 안 맞는 듯... ★★
주위에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친구 한 명 없는 지로(코이데 케이스케)는 생일이면 자신에게 줄 선물을 사서 혼자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20세를 맞는 생일에도 역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지로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아야세 하루카)는 지로와 함께 유쾌하면서도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내더니 모호한 말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그로부터 일 년 뒤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이보그로 나타난 그녀는(?) 미래의 자신이 자신을 거대한 사고로부터 구하기 위해 보냈다는 아리송한 얘기를 한다. 어쨌거나 사이보그 그녀와 함께 동거하게 된 지로는 물불 안 가리고 자신을 도와주는 그녀에게 어느덧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엽기적인 그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잇는 강한 여성의 완결판인 듯한 <싸이보그 그녀>(<무림여대생>까지를 포함해)를 보면 아마도 곽재용 감독에겐 강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내재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반대 차원에서 조금은 덜 떨어진 듯한 남성의 이미지까지도.
개인적으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의 초중반부는 좋아하지만 후반부는 좋아하지 않는다. 똑같은 차원에서 <싸이보그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전지현과 아야세 하루카가 보여주는 엽기적인 행동들은 겹치고, 언뜻 보이는 슬픔 역시 동일한 이미지를 남긴다. 후반부의 늘어짐도 비슷하고.
물론 <싸이보그 그녀>는 단지 여성 캐릭터가 더 강해진 것 외에도 많은 면에서 <엽기적인 그녀>보다 확장된 외연을 보이기는 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미래 장면이 영화 속 영화 장면으로나(!) 구성되었다면 <싸이보그 그녀>는 아예 미래와 현재를 몇 차례씩 왔다 갔다 거린다. <엽기적인 그녀>가 미래에서 온 남자 주인공이 모호하게 처리되었다면, <싸이보그 그녀>의 그녀는 아예 100년이란 시간을 건너 뛰어 현재로 와서는 지로와 연인관계가 된다. 게다가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는 도쿄의 모습은 상당히 스펙터클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그녀와 싸이보그로서의 그녀의 순환 구조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인과 결과가 구분되지 않은 채 뒤틀려져 있다.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이보그를 발견하곤 사이보그의 기록을 자신에게 이입, 과거로 가서 지로를 만나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내고, 지로는 그녀의 외모를 본 딴 사이보그를 만들어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보낸다. 도대체 맨 처음 그녀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지로의 머릿속에서? 아마도 그녀의 외모가 지로의 이상형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곽재용의 감상주의, 순애보는 종종 너무 배배 꼬여 일종의 판타지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으며, 거기에 앞에서도 말했지만 후반부의 늘어지고 손이 오그라들 정도의 장엄한(?) 감상주의는 한국에서 만드나 일본에서 만드나 곽재용의 영화에 일종의 인장 역할을 한다. 결국 <싸이보그 그녀>는 좀 더 강한 여성으로 업그레이드된 일본판 <엽기적인 그녀>라 할만하다. 여성이 강해졌다고 영화가 더 좋아진 건 아니지만 말이다.
※ 이 영화에서 지로와 그녀가 지로의 시골에 갔을 때 일본어로 된 예민의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린다. 난 그 장면에서 민망할 정도로 간지러웠다. ‘정말 오버하는 군’ 이런 생각을 했는데, 같이 봤던 동료는 그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취향 차이일 것이다. 나쁘게 표현해 배배 꼬이고 늘어지는 곽재용의 감상주의, 순애보를 같은 이유로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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