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던, 굳이 시간을 내서 접하고 싶었던, 그런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100만 관객돌파’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에서 없었던 획기적 사실. 그래서 보았다. 마지못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극장 개봉관에서 보았다는 것이 제법 든든한 만족이 될 것이다. 그래, 나도 보았다. 이로써 영화를 대하며 논하며, 가장 다행스런 위안이다.
평균수명을 훌쩍 뛰어넘은 소를 찾아낸, 감독의 발품이 빛난다. 다큐로 담은 것이 큰 수확이다. 소를 사고 키우고 팔고, 또한 소와 더불어 이루어진 노동의 결실은 한국 경제성장과 틀을 같이함에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의 나이를 제하고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의 전개다. 그럼에도 관객이 엄청 찾았다. 그냥 TV다큐이거나, 인간극장류의 제작이었다면, 이토록 큰 반응이었을까. 의문은 크다.
쑥국새는 하냥 울고 있다. 모질고도 질긴 목숨들이 오늘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 최노인은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며 땅을 일구고, 소를 위해 꼴을 직접 준비한다. 한 발짝 내딛기조차, 너무 늙어버린 소는 달구지를 끌기에도 버겁다. 그 중 제일 생생한 이는 할머니, 헌데 연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영화는 이들로 구성되는데 서로가 달구지를 끌며, 밀며 측은할 정도로 산다. 자식을 공부시키고 도회지로 진출시킨, 흔하지만 가슴아픈 휴먼드라마다. 여기에 관객들의 시선이 몰린다.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되 근본의 아픔을 비껴간다. 영화 중간에 반짝 등장하는 시위장면, 광우병 수입소 반대집회. 이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소의 멍한 눈빛과 최노인의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스쳐 지난다. 봄날 따스한 햇볕조차 몰려오는 졸음 앞에 귀찮듯, 꼭 그러하다. 수입쌀파동 등, 농민의 삶에 굵직한 사건들은 무수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최노인 일가는 무탈했던가. 무탈할 리 없건만, 그에 대한 고민과 아픔은 곁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정녕 감독의 의중이라면, 참 쉽게 영화를 만든 것이다. 더해서 관객들조차 쉬운 영화를 보려함이다. 멍에를 줄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가내수공업을 운영하는, 흔한 재봉틀공장이든 선반류의 공장이든. 보통 기계들의 수명이 있지만 기름치고 닦고 조이고해서 몇 년을 더 사용하고 있다. 기름진 손으로 점심을 먹으며, 아차 하는 순간에 손가락을 잘리기도 했다. 그래도 자식들을 키워냈다. ‘워낭소리’와 괘를 같이하는 휴먼드라마다. 비일비재하다.
헌데 기계의 수명이 다해간다. 더는 어쩔 도리가 없단다. 설상가상, 경제 한파가 몰려왔다. 이전에도 위기가 있었지만 용케 넘겼다. 이번에는 방법이 없다. 낙담과 실의. 이들을 담아낼 용기 있는 카메라는 없지 싶다. 왜 초래되었는지를 찾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끝을 얘기할 수조차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노인의 우직한 삶, 그보다 못하다 폄하될 우리네 어버이들은 적다. 그럼에도 ‘워낭소리’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최노인의 삶에서 위안받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대화의 뿌리, 향수. 누구라도 걸쳐있는 농촌, 시골에 대한 그리움의 발산이다. 바로 이 시기에 더욱 컸다. 다 잊고 싶은 것이다. 다 말아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픈, 그 곳에 가면 그리 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곁들여진다. 경외감, 우습게 넘기고 싶다. 소의 주검은 포크레인으로 무덤에 묻힌다. 그 씁쓸한 장면에서 생명의 경외감은 사라지고, 평생 쓰다 버리는 부품일 뿐이다. 살아있고, 옆에 있음에 소중하고 값있다.
향수, 현실도피적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면 독립영화의 저변으로 퍼져가야 한다. 이후에도 ‘똥파리’ ‘할매꽃’ 등이 기다리고 있다. 가히 작품성으로 어디 빠지지 않을 것이다. 관객들이 정녕 ‘워낭소리’에서 영화를 영화로 묻어버리지않고 삶의 한 귀퉁이로 보려했다면, 관심은 이어져야만 한다.
또한 관객들이여 ‘워낭소리’의 노부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자. 더 이상 ‘집으로’ ‘맨발의 기봉이’처럼 아픔을 주는 우를 범하지 말자. 큰 감동 없어도, 그냥 세상살이를 보여준 영화들. 우리네 설혹 못난 삶이라도 그처럼 실한 구석이야 있지 않으련가. 있는 자리에서 보다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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