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우린 태어나면서 보이지않는 워낭을 하나씩 목에 걸고 태어난다 세월이 흐르고 언제부턴가 등허리에 멍에가 걸매어지고 코에는 코뚜레가 꿰어진다 동이 트고 몸을 일으키면 워낭이 운다. 한걸음을 옮겨도 워낭소리가 울리고 숨을 쉬어도 워낭소리가 울린다. 워낭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워낭소리로 코뚜레를 하고 멍에를 걸머매고 허덕지덕 평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1. <영감님> 숨이 붙어있는 한 꿈척거려야 한다. 숨이 붙어있는 한 수레를 끌고 밭을 갈고 꼴을 베야한다. 경운기가 활개치고 이앙기가 곁을 내달리며 비웃어도 느릿느릿 쟁기매어 밭을 갈고 허리 굽혀 두손으로 모를 심는다. 어렸을 적 침을 잘못 맞아 심줄이 오그라붙어 다리병신이 된 인생 남들 안지는 멍에를 하나 더 짊어지고 사는 인생 질뚝거리는 걸음으로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40년을 산 소와 함께 농사지어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 다 가르쳐 도시로 보내고 또 질뚝거리는 다리 끌고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40년을 산 소와 함께 농사지어 도시로 나간 자식들한테 하얀 쌀포대 보내며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니 어쩔거여!” 하며 굽은 허리 애써 펴며 껄껄껄 웃는다.
2. <할머니> “애고~ 남들은 싱싱헌 남편만나 평생 호강허고 사는디 내는 병든 남편 만나 평생 죽도록 고생만 허네.!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야!” 평생 엎드려 농사일 하느라 90도로 휘어버린 허리를 제대로 한번 펴지도 못하고죽도록 김매고 쇠죽 끓이고 목석같은 남편 걷어멕인다. 죽어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아도 목석같은 소도 목석같은 영감도 대꾸 한번이 없다. 고함이라도 빽 지르던지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든지 속시원히 지르는 소리한번 듣고 싶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들이다 그래도 죽어라고 잔소리에 넋두리를 퍼 늘어놓고 그 잔소리와 넋두리심으로 힘겨운 인생 힘내서 살아간다. 도대체 웃을 일이라곤 없는 삶속에서 그나마 넋두리 끝에 제풀에 한바탕 껄껄 웃어제친다. “저놈의 소새끼가 죽어야지 내가 좀 편할낀데... 언제나 죽을라꼬 저카고 있노!” 하던 넋두리가 현실이 되던 날 “불쌍한 소새끼..., 쫌만 더 살다 갈끼지...”하며 울음섞인 넋두리를 한다.
3. <소> 마지막 숨처럼 숨을 내뱉으며 한발짝 한발짝 겨우 떼며 비탈진 길을 매일 수레를 끌더니 이제 일어날 힘조차 고개들 힘조차 없어 눈을 희뜩이며 무릎 꿇고 주저앉아 대가리를 힐청거린다. 수의사가 “이제 준비를 하세요.~” 최후통첩을 할 때 그때서야 그의 등에서 멍에가 벗어지고 평생 꿰었던 코뚜레가 빼지고 목에서 워낭이 떼어진다. 평생을 짊어지고 살았던 짐을 하나씩 차례로 내려놓고는 힘겹게 치어들고 다니던 목을 평생처음 편안히 땅에 늘이고 마지막 숨을 푸욱~내 뱉는다. 그제야 평생 자신을 채찍질해대며 이리저리 끌고다니던 워낭소리도 뚝 그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세상 편안한 안식처 그것은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일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4. <영감님의 워낭소리> 쩔렁~쩔렁~ 동이 트고 워낭소리가 울린다. 영감님은 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 발고락이 무지러진 발을 끌고, 어릴 때 침을 잘못 맞아 심줄이 오그라붙은 그래서 꼬챙이같이 말라비틀어진 다리를 질척거리며 허위적 허위적 들판으로 나간다. 혼자 걸어 나간다. 휑한 들판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며 조용히 엎디어 있다. 벌건 벌거숭이던 것이, 초록으로 팔랑거리던 것이, 누런 황금물결로 일렁이던 것이 다시 처음의 모양으로 벌겋게 꾀를 벗고 또 그를 기다리며 소를 기다리며 엎디어 있다. 하지만 이제 소는 없다.
소의 워낭소리는 이제 그쳤지만 영감님의 워낭소리는 아직 울린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울리고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워낭소리에 이끌려 몸을 꿈척거릴 것이다. 숨이 다해 그의 눈이 희뜩거리고 목이 힘겨워 힐청거릴 때, 평생 처음 편안히 땅에 머리를 누이고 큰숨을 뱉을 때, 그때서야 그의 등에 얹힌 멍에가 벗어지고 코에 꿴 코뚜레가 빼지고 목에 달린 워낭도 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워낭소리도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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