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선... ★★★★
평생 농사만 지어온 최원균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에게 시집온 이삼순 할머니.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에게 소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이동할 수 있는 다리이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기구이자, 무엇보다 가장 친한 친구 - 삶의 동반자이다. 영화에서 직접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의 평균 수명은 15년인데, 이 소는 10살 정도에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시작해 벌써 30년이나 그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소만 살핀다며 불평을 늘어놓지만,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에도 새벽이면 일어나 소죽을 쑤어 먹이고, 소와 함께 들로 나가 소와 함께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수의사는 소의 수명이 다했다며 일 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최종 선고를 내린다.
영화 상영 내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워낭소리>는 아무런 내레이션이나 설명 없이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말 못하는 짐승의 동행을 담담히 그려낸다. 화면에 그려지는 영상은 너무 애닯고 쓸쓸하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할머니의 따뜻한 불평불만은 때때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특히 영정사진을 찍는 할아버지에게 ‘웃어’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은 한 마리로 끝내준다) <워낭소리>는 죽음을 눈앞에 둔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암울하다거나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어쩌면 죽음은 그저 일상의 한 자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워낭소리>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인간인 할아버지와 짐승인 소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다. 절뚝이며 걷는 할아버지와 비틀거리며 걷는 소의 걸음걸이도 비슷하고, 묵묵히 들판을 바라보는 눈길도 비슷하며, 심지어 조는 모습조차 비슷하다. 30년 동안의 동행은 종의 차이를 뛰어 넘어 이토록이나 비슷한 이미지로 가꿔 놓았다. 소를 위한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도 참 정겹다. 거의 말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농약 때문에 소가 죽을 까봐 논과 밭에 농약 한 번 쓰지 않았고, 젊은 소의 행패에 가슴 아파 한다. 일을 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기어 기어 풀을 베어 소를 먹인다. 머리가 가려운지 배가 고픈지 소의 울음소리만으로도 알 정도로 둘의 교감은 두텁다.
할아버지에 대한 소의 마음도 여기저기 묻어난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산 소일지도 모를 녀석은 폭우로 우리가 무너졌는데도 할아버지 깰까봐 조용히 장맛비를 견뎌내고, 비틀거리면서도 할아버지의 자가용 역할을 묵묵히 감내해낸다. 심지어 우시장에서 팔리는 신세가 되기 위해 나서는 길에서도 한 번 댓거리 없이 조용히 따라 나선다. 굵은 눈물을 흘린 채. 이 장면이 <워낭소리>에서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다. 소의 눈물에 객석 여기저기선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가장 염려되는 건 소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가 혹시 잘못되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할아버지와 소는 너무나 닮았다. 외모로도 닮았지만, 무엇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처지가 닮았다. 그리고 소(일반 대명사로서의 소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소)가 없이 할아버지는 아마도 생존의 가치를 느끼시지 못할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농사일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천형이다. 그리고 그 천형을 해내기 위해 소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제 잡아먹기 위한 소가 있을 뿐 일하는 소는 찾을 수조차 없다. 할아버지는 “소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신다. 그래서일까. 죽기 직전에야 고삐를 풀게 된 소의 마지막 모습이 내내 가슴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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