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비슷하다면 정말 재밌다.. ★★★☆
<은하해방전선>은 예전부터 본다 본다하면서 기회를 놓쳤던 영화였다. 늦었지만 이 영화를 보리라 결심하게 된 건 EBS <시네마천국>의 한 꼭지를 윤성호 감독이 담당하면서부터였다. 저런 기묘하고 독특한 세계관의 감독이 만든 영화는 대체 무슨 빛깔일까 하는 호기심. 결론적으로 <은하해방전선>은 생각만 비슷하다면 낄낄거리며 재밌게 볼 수 있는 한마디로 골 때리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초짜 감독 영재(임지규)는 외모부터 윤성호 감독의 분신이다.(아마도) 첫 장편 연출을 앞두고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았는데 주위에선 세계적 배우의 캐스팅을 이야기하고 수 십 억의 투자 얘기가 오간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배우 혁권(박혁권)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주요한 배역을 맡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이 와중에 애인 은하는 영재가 말이 많다며 떠난다. 이리저리 스트레스를 받던 영재는 급기야 원인모를 실어증에 걸리고, 목소리는 엉뚱하게 음악처럼 소리를 내기도 한다. 초짜 감독 영재는 실어증을 고치고, 무사히 고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얼핏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관한 영화로 보인다. 실어증에 걸린 영재 대신 나선 혁권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소통으로 시작해 소통으로 말을 끝낸다. 그리고는 끝내 웃어버린다. 다른 장면을 보면, 영화평론가와 배우 은경 등은 술자리에서 뭔지도 모를 말들을 주고받으며 흡족해 한다. “그런 게 그런 게 아니겠어요?” 그러자 스탭 중 하나가 “도대체 그게 뭐냐?”고 되묻자 내용으로는 대답하지 못하면서 스탭의 태도만을 문제 삼는다. 즉, <은하해방전선>은 소통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는 담론에 대한 비웃음, 냉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은하해방전선>엔 소통과 관련한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교포 스탭은 영어로 영재에게 설명하고 영재는 모호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혁권은 복화술로 1인 2역을 하기도 하며, 실어증에 걸린 감독 대신 일본인 투자자와 얘기를 나눈다. 은하는 영재가 말이 많다며 떠나가고, 새로 애인이 된 은성은 청각장애인이다. 거기에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같이 지낸 은진은 동시녹음기사이다. 그런데 영재의 실어증을 이용, 혁권은 자신의 영화 출연이 결정된 것으로, 은진은 영재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주위 사람들을 속인다. 이것은 어쩌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조건의 불평등성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르며, 소통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 속에서 가능하다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말이 많던 시절의 영재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반면 실어증에 걸린 후에야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걸 보면, 소통이 단순히 말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무엇보다 <은하해방전선>은 요란하고 두서없고 복잡하고 뜬금없기는 해도 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코미디적 요소가 신선함을 안겨주는 재미있는 영화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영재가 여자를 꼬실 때 사용하는 일종의 작업 멘트가 있다. “저에게 3천원이 있는데, 그 3천원을 다 다 드릴 수 있어요. 4천원이 있다면 4천원을 다 드릴 거에요” 은성이 되묻는다. 그럼 “3억이 생기면 어떻게 할래요?” 고민하던 영재는 답한다. “그래도 3천원은 드릴게요”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배꼽 잡게 웃기는 장면은 실어증에 걸린 영재가 병원 의사를 찾아가 진찰 받는 장면이다. 의사가 “친척 중에 혹시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있나요?”라고 묻자 영재는 노트에 쓴다. “사촌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그러자 의사는 답한다. “대단히 심각하군요” 이런 농담이 불편하지 않다면, 즉 생각만 비슷하다면 이 영화는 너무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