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대면하는 고통의 과정을 유머로 승화하는 경지라니...★★★★
시커먼 화면에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에 나오는 이름 등은 모두 허구이며, 독일의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자막이 흐르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는 벽에 쓰여 있는 낙서를 지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1939~45년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인 1990년에 제작되어 그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인 <더 걸>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깨트린 묘한 영화였다. 사회적인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파헤치는 여인의 이야기는 숱한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독특한 소재는 아니다. 그리고 대게 이런 영화들의 분위기는 비슷한 이미지로 체화된다. 진지하고 진득하고 무거울 것 같은 분위기. 그런데 <더 걸>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영화 주인공의 이름은 소냐. 그녀의 고향은 필징이다. 소냐는 정부가 주최하는 에세이 공모전에서 당당히 일등을 함으로서 일약 동네의 유명인사가 된다. 또 다른 에세이 공모전에 도전하는 그녀가 잡은 주제는 ‘2차 대전 당시의 필징’. 그녀는 나찌의 저항도시로 알려져 있는 필징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모든 자료는 찾을 수 없거나 접근 불가이며,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들만 늘어놓는다. 뭔가 숨겨져 있음을 느낀 소냐는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우면서도 진실에 대한 추격을 멈추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협박이 시작된다. 달리는 자동차 유리창에 돌이 날아오고,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심지어 집에 다이너마이트가 던져지기도 한다. 그래도 진실에 대한 그녀의 추격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은 공산주의자로 매도되며, 동독으로 가서 살라는 폭언을 듣는다. 그녀는 결국 재판을 통해 자료에 대한 열람권을 보장 받고, 그 자료를 토대로 책을 펴내 독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갑자기 필징의 분위기가 바뀐다. 그녀는 영웅 대접을 받고 필징시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흉상 공개 식장에서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 거냐? 내가 무엇을 더 까발릴지 몰라 두려워서 이러는 거냐? 이제 그만 두라는 것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학창시절 자신의 꿈을 빌던 나무에 의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매우 진지할 것 같던 <더 걸>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주인공 소냐의 입을 통해 설명되어지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더 걸>은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과거 인종차별에 가담했던 추악함을 감추고 마치 언제나 정의를 추구한 것인 냥 포장되어 있는 서독사회의 위선을 풍자하고 까발린다. 영화는 대단히 민감한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치적 묘사를 서슴지 않는다. 도서관이라든가 성당, 거리 풍경은 흑백의 연극 무대로 꾸며지고 집의 소파는 필징 시내를 돌아다닌다. 주인공의 상세한 설명에 덧붙여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가 첨가되며 배우들의 연기는 연극을 하듯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로 버무려진다.
진실을 그대로 대면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유쾌함과 유머로 치장한 것일까? 누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심지어 나 같은 경우, 다른 나라에도 4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왜냐면 4계절은 우리나라만의 특권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의외의 유쾌함과 유머, 그리고 키치적 묘사로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진실이란 이런 해피엔딩이 아니야’라고 소리치듯이 강렬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이 얘기가 그저 1970~80년대 독일의 과거일 뿐이라고 편안하게 보기는 어렵다. 보는 내내 현재 우리의 현실과 겹치기 때문이다. ‘1945년 이전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 이 질문은 우리에겐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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