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방문... 잔잔한 파문... ★★★☆
이집트는 중동 국가 중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국가지만, 여전히 사이는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이집트의 한 악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얘기를 다룬 <밴드 비지트>에는 아이러니하게 단 한 명의 이집트 배우도 출연하지 않았으며,(모든 배우는 이스라엘 배우들이며, 밴드의 2인자인 시몬을 연기한 배우만이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출신 배우라고 한다) 심지어 이집트에서는 상영조차 되지 않았다.
영화는 처음 “이집트 경찰악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기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는 자막을 깔면서 시작한다. 이집트의 경찰 악단은 이스라엘의 ‘페타 티크바’라는 도시의 초청을 받아 이스라엘을 방문하지만, 잘못된 발음 탓에 ‘벳 하티크바’라는 모텔도 없는 조그만 시골 동네에 도착한다. 이미 버스는 끊긴 상황에서 다행스럽게 이들 앞에 나타난 식당. 이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외롭지만 씩씩한 식당 여주인인 디나와 두 젊은 청년의 도움으로 세 그룹으로 나뉘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영화는 바로 그 하룻밤의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 아주 사소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이야기들.
영화를 보기 전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라는 두 나라의 관계를 고려해 보건데, 혹시 두 나라의 과거라든가 현재의 정치적 쟁점들, 또는 종교 갈등에 대한 얘기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영화는 오로지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들만을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국가적으로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닌 두 나라의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도 소속 국가의 사이처럼 대립하고 적대시하게 되는 것일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집트 악단 단원들과 이스라엘 시골 주민들의 개인적 만남은 국가 관계가 개입할만한 여지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의 처지에 동감하기도 하고 당연히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러다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을 발견하고는 잔잔한 소통을 시도하기도 한다. 어리숙한 이스라엘 청년은 이집트 청년의 도움을 받아 아가씨와 데이트 하는 데 성공하고 옹알거리며 자는 아가를 보고 악단 단원은 새로운 곡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어쩌면 떠나기 전에 자신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연주를 하지 않을까란 기대마저도 저버린 채 악단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마을을 벗어난다. 그러나 마지막에 인사하는 악단 단원들과 디나, 그리고 마을 청년들의 표정과 몸짓은 고작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도 자연스럽고 정겹다. 소통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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