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소통의 기적.. ★★★☆
예상으로는 영화 도입부에서 미리를 둘러싼 얘기가 어느 정도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화 <누들>은 스튜어디스인 미리가 비행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가정부가 급히 떠나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미리, 길라 자매 사이에 남겨진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 - 누들에 대한 얘기와 함께 자매의 오해와 갈등을 포함해 이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소개가 교차하며 이루어진다.
미리에게는 두 남편과 아이의 죽음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으며, 언니 길라는 남편과 별거 후 동생 미리 집에 얹혀살고 있다. 길라의 남편은 처제인 미리에게 마음을 두고 있고, 길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거기에 길라와 남편 사이에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던 옛 남자까지 등장해서 이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미리와 길라는 사사건건 부딪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때 등장하는 아이 누들은 복잡한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던 어른들의 세계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용기’다. 미리는 겁이 나서 결정적인 순간에 멈칫 거리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어 누들에게 엄마를 찾아 주며, 그런 미리를 보고 길라도 힘을 얻는다.
시놉시스만으로 보면 꽤나 조용할 것 같은 영화는 의외로 유쾌하고 가볍게 톡톡 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감동이 줄어들지는 않으며, 어쩌면 유쾌함의 감정을 딛고 나가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당연하게도 영화의 웃음 포인트는 주로 누들과 다른 출연인물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스라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가 혹시 들을까봐 조용히 말을 한다거나 중국어 사전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해 보는 장면들. 그러면서 영화는 그런 웃음의 순간 사이로 가슴이 울리는 빛나는 지점들을 배치해 놓는다. 서툰 이스라엘 말로 ‘미리’의 이름을 불러주고, 남편과 아이의 비극에 공감해주는 누들의 눈동자와 몸짓은 미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는 <누들>이 주는 메시지는 어쩌면 누들과 애완견 밤비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둘의 관계는 진심어린 소통은 언어와는 하등 관계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마지막 누들이 떠나는 장면에서 밤비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누들의 모습과 자동차를 열심히 추격하는 밤비의 모습은 그 자체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러 곳에서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누들이야 어려서 그렇다고 하지만(어린 애들이 말을 빨리 익히긴 하든데), 6년을 이스라엘에서 가정부로 일한 누들의 엄마가 이스라엘 말로 거의 소통하지 못한다는 설정도 좀 그렇고, 누들 문제 해결을 위한 주위의 충고라는 게 마치 말을 맞춘 듯이 이렇게 해도 어렵고, 저렇게 해도 어려우니 ‘결국 누들은 니가 돌봐줘야 한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도 좀 그렇다. ‘정부도 못 믿을 존재고, 시민단체도 신뢰할 수 없다. 직접 해라’ 이는 마치 결론을 만들어 놓고 그 결론으로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짜 맞춰진 설정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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