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얻는다(아르미안의 네딸들 中)’는 만화 명대사도 있건만, 내 자신의 인생은 역시 물 흘러가듯 술술 풀려가길 바라게 된다.
<허니와 클로버>에는 사랑도 일도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아, 시종일관 독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짠!’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다케모토, 20대 초반의 평범한 미대생으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모두가 ‘미대생 5명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청춘만화’라고 말하는 이 영화의 원작을 혼자서만 ‘다케모토의 조금 늦어버린 성장기’라고 말하게 할 만큼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가난한 미대생들의 생활을 비추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순박한 미대 2년생 다케모토와 어른인 척 하는 안경선배 마야마, 만년 유급생인 괴짜천재 모리타는 5평 남짓의 낡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빈곤 동료다. “알바비가 안나왔어” “고기가 먹고싶어”라고 외치는 미대생들의 모습에서 개그물이 연상되지만, 곧 그들의 사랑을 받는 혹은 주는 두 여주인공의 등장으로 로맨스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녀들은 하나모토 교수의 조카이자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하구미와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는 훤칠한 미녀 야마다이다.
주인공 5명이 등장했으니, 한두 커플은 탄생할 법 한데 이 영화의 사랑은 잔인할 만큼 일방통행이다. 다케모토가 하구미를, 마야마는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연상의 여인을, 그런 마야마를 야마다가 좋아하는 복잡한 구도가 되어 버린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모리타와 하구미의 사랑마저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한편, ‘사랑’의 아픔을 대신하기 위한 따뜻한 부분이 바로 다케모토의 성장기이다. 그의 고민은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좀처럼 취직을 못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모리타, 하구미와 물 흘러가듯 취직을 해버린 마야마의 앞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 하고 싶은 것이 있어 우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우는 것 중에, 어느 쪽이 괴로울까요”라는 다케모토의 독백은 아직 무엇을 좋아하는 지조차 모르는 그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20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한 가지 일에 정진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여기에 ‘평범’이란 단어로 무장하고 있는 다케모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일을 찾아 발버둥치는 다케모토의 모습에서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자화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는 자아찾기 여행에 마음 속 응원을 보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그의 마음에 절절할 만치 동조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한 다케모토의 모습에 대견한 마음을 보낸다. 마지막에는 그의 성장에 눈물까지 찔끔거린다. 그리고 그에게 전한다. “다케모토! 너는 뛰어난 재능도 눈에 띄는 개성도 없지만, '20대', '청춘'의 눈부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주인공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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