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웨스턴의 탄생.... ★★★★
일부 사이트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소개 페이지에 보면, 첫 작품이 1960년 <폼페이 최후의 날>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건 감독이 아니라 조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일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1961년 <오드의 투기장>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감독 데뷔를 했지만 열악한 이탈리아 영화계 사정 때문에 다시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1964년에 드디어 마카로니 웨스턴 또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탄생을 알리는 <황야의 무법자>를 세상에 내 놓는다.
지금 봐도 참 대단한 작품이지만, 전통 웨스턴이 저문 자리에 느닷없이 등장한 이 낯선 웨스턴은, 특히 미국 영화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같은 ‘좋은 사나이’들이 대의명분이나 정의를 내세우며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싸우는 전통 웨스턴의 주인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부터 시작해서 등장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오로지 자신의 이해와 탐욕을 위해 움직이며, 영원한 동지와 적이 없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아내를 뺏긴 가난한 농부나 힘겹게 살아가는 주민들이 마침내 의리를 지키고 저항하는 모습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어느 계급에 따뜻한 시선을 두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경우만 놓고 봐도 분명 엄청나게 빠른 총 솜씨를 자랑하는 걸출한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에서 대립하고 있는 두 가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간질시키기도 하고, 서로의 정보를 건네주며 둘 모두에게서 돈을 받는다. 심지어 죽은 시체를 살아 있는 것처럼 묘지에 앉혀 놓고는 ‘살아서 도망간 병사가 묘지에 숨어 있다’며 돈을 받기도 하고, 반대쪽 가문에도 이 사실을 알려 따로 정보료를 챙길 정도로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비열한 캐릭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오로지 자신의 탐욕만으로 움직인 결과,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극도의 허무 속에 죽어 나간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이러한 허무와 긴장을 위해 동원한 방식은 인물에 대한 극단적 클로즈업. 그것도 단지 얼굴만이 아니라, 손, 발부터 얼굴 중에서도 눈, 입 등 특정 신체부위만을 강조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대화로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화 대신 미묘한 얼굴표정과 눈빛, 움찔거리는 입술 등으로 심리를 묘사하고 긴장감을 높인다. 누군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는 미국 밖에서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라고 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바라보는 미국은 극단적으로 ‘이해와 탐욕’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 그 자체인 것이다.
※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를 기억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음악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의 '와우 와우'하는 효과라든가, <황야의 무법자>에서의 휘파람 소리는 서부의 황페함을 표현하는 데 정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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