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를 염원한 한 천재 음악가의 치열했던 삶...★★★★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전남 강진을 돌아다니다가 ‘윤한봉 선생을 모르면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았거나, 너무 어린 사람들이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는 내가 좋아했던 오래된 Rock 가수들을 모른다고 하면, ‘너무 어린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Pink Floyd, Yes 같은 Progressive Rock Group이라든가 특히 Beatles. Beatles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많이 모른다. 기껏해야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같은 노래 몇 곡으로 비틀즈를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매니아들처럼 비틀즈의 연혁과 앨범 이름, 앨범에 수록된 곡을 다 꿰고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비틀즈의 모든 정규 앨범을 가지고 있고, 일부 공연 DVD와 혹시 빠진 게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비틀즈 관련 앨범을 LP 또는 CD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솔로 정규 앨범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만큼 나에게 비틀즈는 단지 하나의 뮤지션이 아니라 나의 젊음을 지배했던 영혼들 중의 하나였다. (그 영혼 중에는 Pink Floyd, Deep Purple 등이 있었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처럼 한 그룹에 뛰어난 두 명의 리더가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대체로 팬들 사이에선 누가 더 뛰어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며, 대게 그런 그룹은 둘의 갈등으로 인해 해체되거나 한 명이 탈퇴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비틀즈도 그랬고, 핑크 플로이드도 그랬다. 그래서 누군가는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한다고 하면, Roger Waters가 좋아? 아니면 David Gilmour가 좋아? 라고 물어보거나 비틀즈 얘기가 나오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중에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가 위대했던 이유는 뛰어난 두 명의 조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둘 중의 누가 더 좋은지, 또는 더 지지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 정말로 누가 더 좋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어릴 때이기도 했고,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존 레넌이 살해당하자, 많은 팬들은 슬퍼하면서 오노 요코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비틀즈 해체도 존 레넌의 죽음도 모두 오노 요코 때문이며, 여기엔 일본에 대한 민족적인 거부 정서까지 뒤섞여 있었다. 원제가 <The U.S. vs. John Lennon>인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에서도 ‘일본의 마녀가 존 레넌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오노 요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단지 한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드 리프와 존 쉐인필드는 존 레넌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미국 정부가 한 개인에게 행한 폭력을 고발하려는 의도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가 <미국 대 존 레넌>이며 정확하게는 <닉슨 대 존 레넌>일 것이다.
많은 비틀즈 팬들이 오노 요코를 비난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를 통해 당시 기록화면을 보면, 오노 요코야 말로 존 레넌의 동반자였으며, 존 레넌은 오노 요코를 만나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얻고 있다. 비틀즈 시절부터 ‘비틀즈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 존 레넌은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위해 실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펼치는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란 어떻게 보면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자루를 뒤집어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외적 형상에 속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완전한 소통’이라고 하거나 특히 그 유명한 Bed Peace 운동이 침대에서 전개되었고,(침대에서 그가 부른 <Give Peace A Chance>는 반전 운동의 상징적 노래가 되었다) 자신의 돈으로 전 세계 11개 도시의 옥외 광고판에 ‘War Is Over’(전쟁은 끝났다)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문제는 해프닝에 가까운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젊은이들에게 살아있는 신화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비틀즈의 존 레넌이라는 사실이었다. 존 레넌을 주의 깊게 살피던 미국 정부는 존 싱클레어 사건이 전개되면서 결정적으로 그의 파워를 실감하게 된다. 잠복 중인 여경을 두 대 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급진 운동가 존 싱클레어에게 10년이라는 과도한 형량이 선고되고, 이에 존 레넌은 공연에 참석, 노래를 부르고 석방을 촉구한다. 존 레넌의 호소를 받아들인 많은 비틀즈 팬들과 젊은이들의 항의에 깜짝 놀란 법정은 존 싱클레어를 석방한다. 그저 젊은이들의 우상에 불과했던 존 레넌이 실체적 힘으로 전화하는 순간이었다.
닉슨 행정부는 본격적으로 존 레넌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움직임에 착수한다. 여기엔 FBI가 동원되었으며, 대통령과 상원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존 레넌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움직임에 근본적으로 존 레넌이 굴복한 건 아니지만, 목숨의 위협 앞에서 조금은 움츠려 들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존 레넌은 뉴욕을 떠나기 싫어했다. 사람이 많고 익숙한 뉴욕이 조금은 안전하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결국 닉슨 정부는 강제 출국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법의 원칙적용이라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반전 평화운동에 대한 탄압, 존 레넌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변호사와 함께 5년 동안 재판을 벌였으며, 그 사이에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하차하고, 존 레넌은 승리를 거둔다.
존 레넌은 자신이 유명한 대중스타라는 사실을 적절히 활용해 반전 평화운동을 펼친다. 소위 셀레브리티 효과. 영화에는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닉슨 대통령 등 행정부 각료, 상원 국회의원, FBI 요원에서부터 시작해 노암 촘스키 등의 석학, 블랙팬더당 창설자 및 당시 활동했던 급진 운동가들의 인터뷰와 자료화면 등을 적절히 편집해 사용하고 있으며, 화면 전환에는 콜라주 기법 등을 활용, 독특한 질감을 선사하고 있다.(마치 비틀즈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표지처럼) 존 레넌은 비틀즈 시절, 한 인터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수도승도 아닌데, 현안을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가수가 노래나 부르면 되지 왜 정치에 나서느냐며 비판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인만 하고, 학생은 공부만 하며, 주부는 그저 집안 일, 회사원은 회사 일만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발전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얘기는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자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놀란 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에 2008년 한국 사회가 오버랩 된다는 점이다. 백악관 앞에서 수만의 시위대가 촛불을 들고 평화시위를 벌인다. 연설자는 외친다. ‘닉슨이여! 국민들의 소리가 들리는가?’ 수만 시위대는 한 목소리로 <Give Peace A Chance>를 반복해서 부른다. 백악관은 국민들의 촛불시위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촛불시위가 진보적, 극렬 운동가를 넘어 일반 국민들의 참여로 확대되자 시위에 ‘공산주의자’가 참여하고 있다며 색깔공세를 펼친다. 그리고 행정부는 촛불과 피켓 외에는 아무 것도 들지 않은 시위대 한가운데로 경찰력을 투입,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적으로 해산시킨다. 심지어 공화당 국회의원은 대중들을 선동하는 연예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백악관 대신에 ‘청와대’, 닉슨 대신에 ‘2MB’, <Give Peace A Chance> 대신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당 대신에 ‘한나라당’으로 표현을 바꾸면 그대로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문제는 처음 역사는 비극이지만, 반복되는 역사는 희극이 된다는 사실이다.
존 레넌은 뉴욕을 사랑했다. 예술적 감성을 고양시켜주는 뉴욕을 정말로 사랑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미국이 양심적이고 평화롭기를 원했다. 애정이 없는 대상에게 굳이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존 레넌은 미국 영주권을 획득했고, 오노 요코는 아들을 낳았다. 어린 시절 존 레넌은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픈 기억이 있으며, 학창 시절 대표적인 말썽꾸러기로 여러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세계 평화와 세계 만민의 행복을 기원하고 실천에 옮겼던 존 레넌, 정작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팬을 자처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에게 다섯 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1980년 10월 8일, 이 아이러니함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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