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애늙은이의 성공담???
2006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출품했다는 <비투스>는 평소 접하기 힘든 스위스 영화로 다방면의 걸쳐 천재로 태어난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여섯 살 생일에 건반 연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한 비투스는 어린 시절부터 애늙은이로서 천부적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너무나 조속해서 한참 나이 많은 베이비시터를 여자 친구라고 정의 내리는가 하면, 절대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비투스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사를 보면 보청기 회사에서 잘 나가는 아빠는 일 때문에 항상 바쁘고, 엄마는 비투스가 음악으로 성공하길 바라며 항상 연습, 연습을 외친다.
월반을 거듭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성과 음악적 성공을 위해 옭죄는 엄마로 인해 인성적으로 좀 삐딱해진 비투스는 평범해지는 게 무엇보다 절실한 소원이다. 그는 사고를 위장, 자신의 천재성이 사라진 척 위장하며 지낸다. 그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평생 비밀을 약속하고, 비투스는 아빠 회사의 정보를 이용, 할아버지 재산을 주식에 투자, 큰 돈을 버는 등 자신의 천재성을 다방면에 걸쳐 과시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이런 얘기에 일어나기 마련인 천재 소년의 성장 계기는 무엇일까? 사실 영화에서 그런 얘기는 그려지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성장의 계기일 수 있지만, 비투스의 뚜렷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보통 천재의 성장 드라마라면 자신의 천재성을 과신하다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주로는 부모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거나 또는 자신의 천재성으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실패)이 생기는 등의 과정을 거쳐 인간적인 성숙함을 얻게 되고 좀 더 큰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사실 실패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인간적 체취를 느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만약 비투스가 단지 음악의 신동으로만 그려졌다고 하면 그나마 공감을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비투스가 무엇을 하든지, 방황을 한다 해도 음악으로 돌아올 줄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비투스 스스로가 음악만이 나의 길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굳이 비투스는 음악을 할 이유가 없다. 그 어린나이에 주식으로 남들 평생 벌 돈을 이미 벌었고, 공부면 공부, 도대체 승승장구하는 삶인데, 부모 입장에서도 굳이 피아노 공부를 시킬 이유가 없다. 솔직히 좀 징그러울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건 비투스를 연기한 파브리지오 볼자니(6살 비투스), 테오 게오르규(12살 비투스)가 실제 음악 신동들로서 대역 없이 촬영했다는 피아노 연주 장면과 영화 상영 내내 화면을 적시는 클래식 음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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