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표정은 어색한 디지털 배우들의 연기....
애니메이션의 놀라운 기술적 발전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 충분히 눈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애니메이션으로 실사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인데, 로버트 저메키스야 말로 이 분야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놀라울 정도로 인간을 닮은 디지털 배우를 활용한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저메키스는 당시보다 더욱 발전된 기술(퍼포먼스 캡처)로 무장한 <베오울프>를 통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베오울프>의 서사는 새롭게 창작된 건 아니고, 유럽의 오랜 고전을 빌려 온 것이다. 인간과 각종 괴물들, 그리고 용이 공존하던 고대 유럽. 덴마크의 왕이자 한 때는 용을 죽인 영웅이기도 했던 호르트가르(앤서니 홉킨스)는 무차별로 주민을 학살한 괴물 그렌델(크리스핀 글로버)을 죽이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는 선포를 한다. 부하들과 함께 덴마크에 도착한 베오울프(레이 윈스턴)는 그렌델을 죽이고 영웅이 되지만, 분노한 그렌델의 엄마(안젤리나 졸리)가 나타나 전사들을 무참히 도륙내고 만다. 사태를 마무리 짓고자 그렌델의 엄마가 있는 동굴로 찾아간 베오울프는 그렌델이 호르트가르 왕의 자식임을 알게 되고, 그 역시 권력과 부귀영화에 대한 약속을 받고 그녀와의 동침을 받아들인다. 이제 50년 동안 막강한 권력과 영화를 누린 베오울프에게 그녀와의 징표로 남긴 황금술잔이 돌아오고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그런데, 베오울프의 관점이 아닌 그렌델의 엄마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 또는 이 서사시는 영웅을 좋아하는 한 마녀에 관한 얘기로서 더 적당하다)
<베오울프>의 디지털 배우들은 <폴라 익스프레스>의 유령 같았던 얼굴과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섬세하고 매끄러운 건 사실이다. 거기에 앵글로 색슨족의 서사시에 바탕을 둔 이야기도 보는 관객의 감흥을 자아낼 만하다. 로봇이나 애니메이션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대표적 난관으로 Uncanny Valley Effect가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혐오감의 계곡 효과로 번역되는 이 효과는 로봇이나 애니메이션이 점점 실제 인물 또는 동물과 비슷해지는 수준이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 오히려 혐오감을 주게 된다는 이론인데, 바로 대표적으로 <폴라 익스프레스>를 꼽을 수 있다. <폴라 익스프레스>가 상영된 당시에 많은 어린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두려워 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보다 그보다 더욱 비슷한 수준을 높이면 그 효과는 반감될까? 아니면 더욱 커질까? 혐오감에 대한 반응이 좀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어린이들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점에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베오울프>만을 놓고 보면 분명 그 때보다는 혐오감의 정도가 낮아진 것으로는 보인다. 그렇다면 디지털 배우들이 실제 배우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매끄럽고 대단하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인간이나 살아있는 동물이 낼 수 있는 깊이 있는 표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안도감이 드는 부분도 있다. 아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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