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린 시절 기억 중에 어렴풋하지만 기분 좋게 남아 있는 기억은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갔을 때입니다. 죽어도 안 데리고 다니려는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논두렁에서 불꽃놀이 했던 기억도 있구요. 마 당에서 열심히 펌프질해서 물을 끌어 올려서는 그 찬물에 몸서리치 면서 세수했던 기억도 있죠. 저랑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옛날 옛적 이야기라도 듣는 듯한 표정으 로 절 쳐다보지만 전 그때 했던 경험들이 참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 상우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할머니로 가 는 초행길은 가도 가도 끝이 날 생각을 안 합니다. 싫다는 자기를 억지로 끌고 가는 엄마도 맘에 안 들고 깊은 산속에 묻혀 산다는 외할머니는 보기도 전에 벌서 마이너스 100점입니다. 막상 간 외 갓집은 상상을 초월하네요. 텔레비전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 외할머니는 말도 못 하는 꼬부랑 할머니입 니다. 지금 당장 능력이 안 된다고... 잠시만 맡아달라고... 외할머 니에게 자신을 맡기고 가는 엄마가 정말 밉습니다. 설마 진짜 두고 가진 않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진짜 두고 가버렸네요. ㅡㅡ^ 상우는 외할머니를 똑바로 한번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가져온 전자오락기에만 정신이 온통 팔려서 외할머니는 무시하죠. 상우 입 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하는 건지 참 막막합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어 갑니다.
훗... 웃음 밖에 안 나옵니다. 상우는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착한 손자는 절대 아니거든요.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볼 수 있 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도시 꼬마애죠. 외동으 로 자라서 자기 밖에 모르고 영악스럽고 극성스러운 아이요. 그런 아이를 보면서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혀를 차곤 했는데 이 영 화를 보고 나니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바로 도시에 사는 우리 모 두가 아닌가 싶었어요. 특히나 상우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욱 그랬죠. 햄과 콜라만 먹고 오락만 하던 희멀건 도시 아이에서 김치도 잘 먹고 할머니 짐도 들고 까무잡잡한 산골 아이로 변해가 는 상우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심성에 해로운 방부제와 인공색 소를 뿌린 건 어른들이란 걸 절실히 느꼈거든요. 원래 그런 게 아 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라는 말이죠.
이정향 감독. 글쎄요. 제가 만약 심은하와 이성재를 기용해서 상업 적인 면과 작품적인 면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면 내 자신의 자리를 안정시킬 때까지 모험보다는 그냥 안전빵으로 나갔을 것 같 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감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 놀러가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우가 자연 속에서 느낀 황망함과 나름대로 찾아낸 재미를 기억해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을 테니까요. CF로 얼굴이 눈에 익 은 상우 역의 유승호는 영악스러운 도시아이 분위기를 너무 잘 보 여주고 있더군요. 아이와는 반대로 초짜 배우인 외할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의 순박함이 그 덕에 더 돋보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실한 마음은 다른 이의 닫힌 마음을 열수 있다는 거 열려진 자연 속에서 잘 그려진 영화였습니다. 물론 노인 밖에 없는 농촌의 현실이 가슴 아프긴 했지만요. ㅡㅡ;.....
제가 [집으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래 드물게 가족이 손잡고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신 문에서 ‘조작된 감동’과 ‘영악스런 상우 같은 감독’이라고 쓴 리뷰 를 봤습니다. 그런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건 영화 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죠. 감독이 조작한다고 해도 진정성이 없다면 순간적으로 눈물이 흐를지언정 가슴 깊이 남는 감동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 글을 보고 영화는 개인차겠지만... 참 뭐랠까... 씁쓸했습니다. 저처럼 느끼신 분이라면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제 마음 이해하시죠? 전 그냥 그 마음만 기억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