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청춘 영화가 참 많다.
보통은 발랄한 청춘영화- 특히 사랑에 관련된 청춘영화들이 많은 편인데
우울한 청춘은 제목에서 보듯이 상큼발랄한 청춘영화가 아니다.
언뜻 보면 정말 문제아 학생들의 우울한 청춘으로 가득찬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둘은 같은 청춘영화지만 다른 시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우울한 청춘이 키즈 리턴보다 하나비나 소나티네에서의 극단적인 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
키즈 리턴이나 우울한 청춘 주인공이 모두 문제아이고 수업이나 학교는 안중에도 없다.
키즈 리턴이 그 유명한 마지막 대사로 직접적이고 교육적인 희망을 불어넣는다면
우울한 청춘은 끝까지 암울하게 청춘을 담아낸다.
쿠조가 물을 준 세 송이 꽃이 쿠조, 아오키, 요시무라를 대신한다고 봐도 되겠다.
쿠조의 꽃은 나머지 두 송이의 꽃보다 늦게 자라고 늦게 핀다.
마지막 쿠조의 꽃이 꽃피우고 있을 때 두 송이 꽃은 져버린 것처럼..
쿠조의 꽃도 언젠간 시들겠지..
이 영화는 일말의 희망도 싹둑 잘라버린다.
그냥 제목 그대로 우울한 청춘일뿐인 것이다.
남은 몫은 쿠조에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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