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새로운 시도는 긍정....
2007년 9월인가 10월인가, 아무튼 그 정도부터 인터넷에선 심심치 않게 <JJ 에이브람스의 새로운 프로젝트>라는 용어가 떠돌아다녔다. JJ 에이브람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그저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떨어지는 영상 하나로 온갖 소문을 만들어 낸단 말인가. JJ 에이브람스는 거대한 떡밥의 원흉(?)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영화팬들에게 각인된 건, <미션 임파서블 3>에서 였다. "도대체 토끼발이 뭐야?"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구해낸 토끼발에 대해 주인공도 관객도 모른 채 영화는 끝이 났다. 맥거핀으로 보기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며, 김윤진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로스트>로 JJ 에이브람스는 또 한 번 악명을 떨치게 된다. 주인공들이 난파된 섬에서 괴물로 연상되는 이상한 존재가 느껴진다. 그런데 긴 시간동안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괴물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이제는 의미조차 없어져, 새롭게 <로스트> 시즌1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 외에는 누구도 괴물의 정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두 번에 걸친 거대한 떡밥으로 수많은 관객을 낚은 JJ 에이브람스 이기에 또 무슨 떡밥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고, 몇 장의 스틸 컷 외에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구설은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드디어 공개된 <클로버필드>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마치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출렁이는 화면으로 시종일관한 새로운(!) 형식의 블록버스터 괴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거대 괴물(소형 괴물도 포함)이 뉴욕 맨해튼에 나타나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일본으로 떠나는 주인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일단의 젊은이들이 아파트에 갇힌 주인공의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맨해튼 중심을 가로 지른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그들의 캠코더는 공원에서 발견되어 미 육군의 중요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스토리에서의 독특함이나 유별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무수히 많은 재난영화, 괴수영화에서 충분히 봐왔던 진부한 스토리에 불과하다.(<고질라>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클로버필드>가 새롭다고 하는 건 빌딩보다 더 큰 거대 괴수의 출현과 파괴되는 맨해튼을 캠코더 화면으로 담았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정말로 캠코더로 촬영된 건 아닐 것이다. 기술적인 건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멀쩡한 화면을 캠코더 화면처럼 보이게 하는 게 더 힘들었을 듯싶다.
캠코더로 촬영된 것처럼 보이려다 보니, 화각은 전체적으로 좁다. 그리고 아마추어(영화에서도 정말 아마추어로 설정되어 있다. 자기 캠코더도 아닌데, 할 수 없이 처음으로 캠코더를 손에 쥐고 촬영을 담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소신으로 끝까지 손에서 캠코더를 놓지 않는다. 이걸 문제 삼기 시작하면 영화의 전제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그냥 관람하자)의 촬영답게 화면은 시종일관 흔들린다. 그렇다보니 관람자들 사이에선 구토 유발 영화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는데, 의외로 그 몰입도란 생각보다 높았다. 보기 전에는 혹시 답답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덧붙여지면서 시종일관 화면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또 영화는 현대의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영화 초기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날아왔을 때를 돌이켜 보면, 거리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오 마이 갓'을 외치면서 손으로는 자연스럽게 핸드폰과 디카를 꺼내 떨어진 자유의 여신상 머리를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저 멀리 빌딩이 무너지는 굉음과 쏟아지는 벽돌들, 그리고 뿌연 연기는 정확하게 9·11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 즉, <클로버필드>는 9·11 이후 미국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캠코더 화면으로 보이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가능했던 건 어쩌면 캠코더로 촬영된 불법 영상물(캠버전)일지도 모른다는 재밌는 상상을 하게 되는 <클로버필드>. 이 영화의 새로운 시도는 분명히 긍정할만하고, 재밌으며, 놀랍기는 해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또는 구분 짓는 시도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위대한 건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높지만, 스테디캠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첫 영화라는 점이다. 이후 많은 영화들이 스테디캠을 사용했지만, <샤이닝>을 따라했다든가 진부하다고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클로버필드>가 새로 도입한 형식을 다른 영화가 사용하는 순간, 그 영화는 따라쟁이 영화, 진부한 영화가 돼버린다. 이게 바로 <클로버필드>의 시도가 가지는 한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