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음.
틴 스릴러, 틴 호러물은 많았다. 더 홀, 패컬티, 캠퍼스 레전드 등등. 이 중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스크림'일 것이다. 최근엔 '디스터비아'란 영화가 나와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이런 틴 영화의 매력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예쁜 꽃들을 사뿐히 '즈려' 밟는 데서 온다. '스크림' 시리즈, '네가 여름...'시리즈, '13일 밤의 금요일' 시리즈가 여기에 해당된다. 걱정이라곤 내일 입을 옷 밖에 없는 팔자좋은 중산층 아이들을 난자하면서 모종의 쾌감을 만들어 낸다. 어린 십대들과 살인자 간의 힘의 불균형이 관객까지도 압도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한편으로는 가학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하나는 십대의 앳된 외모, 노트와 콜라와 스니커즈 뒤에 숨은 추악한 권력의 이면을 들춰내는 데서 온다. 더 홀, 패컬티, 캠퍼스 레전드가 이에 해당될 것 같다. 겉으론 착한 학생, 말 잘 듣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 안의 질서는 성인의 그것 못지 않게 냉혹하고 잔인하다. 그들의 추악한 이면을 들추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물론 그 '신선함'까지도 이젠 진부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브릭'의 매력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르고 완전히 새롭다. 이 영화의 매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완벽한 '변장'이다. 느와르적 문법을 십대들에게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느와르적 관행이 고등학생과 그들의 협소한 삶의 울타리 안에서 현실감 있게 차용된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바바리 코트는 털 달린 회색 점퍼로, 범죄 조직의 아지트는 가정집 지하실로, 보스의 리무진은 개조된 승합차로 대체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변장이 어색하거나 경박하지는 않다. 철저히 감정이 절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느와르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배제됐지만 차가우리만치 단정한 캠퍼스와 교외의 주택가는 느와르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낸다. 캠퍼스의 음지는 다운타운의 뒷골목만큼이나 거칠고 음산하며 도서관, 풋볼 경기장, 주차장, 파티장 등도 느와르적 풍경의 하나로 재현된다.
영화 속 어린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이들에게서 십대적(?) 취향과 생활습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무표정하고 냉정하며 계산적이고 잔인하다. 범인을 추적하고 협박하는 주인공 브랜댄의 솜씨는 왠만한 베테랑 형사 뺨칠만큼 능숙하다. 뽀얀 얼굴을 하고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사람들을 함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는 마약 판매상인 핀과 행동대장인 터거, 브랜댄을 유혹하는 로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차라리 십대의 가면을 쓴 악마다. 아니, 가면을 썼기 때문에 더 악마적이고 더 느와르적이다.
십대들에게서 십대적인 모든 것을 탈색하고 거기에 느와르를 색칠해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시도한 것은 그저 '새롭게 보이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하게 차용된 이미지들이 탄탄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느와르의 비극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더 잘 살려낸다. 단순히 새롭게 보이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어른 귀신보다 아기 귀신이 더 무섭고 심하게 철든 어린 아이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지 않던가. 이들 십대의 느와르는 우울하고 무겁지 않은 대신 차갑고 섬뜩하다. 이런 참신함에 선댄스가 열광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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