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식 유머의 힘
동유럽식 유머의 힘… 한 많고 굴곡 많기로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을 텐데, 우리는 왜 안 될까?
제목을 풀어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1989년 12월22일 오후 12시8분, 당신은 시청 광장에 있었습니까?’ 질문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김일성 정권을 모델삼아 27년간 루마니아를 지배했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에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이 벌어졌고, 헬기를 통해 도주하려던 그의 모습이 생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어 독재자의 몰락으로 기록된 그 시점. 혁명이 시작된 서쪽 국경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루마니아의 작은 동부 도시에서 당신은 어떤 혁명을 겪었는가.(영화의 영어 제목은 ‘12시8분, 부카레스트의 동쪽’) 이건 무한 변주가 가능한 질문이다. 1980년 5월18일, 1987년 6월10일, 혹은 2002년 그 여름…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사건 위주의 역사 기술이 범하는 숱한 오류가 시작된, 과정과 결과의 연속선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과 위험요소를 쉽게 간과해버리는 그 질문. 단호하고 유머러스하게 하나의 질문을 파고드는 이 영화는 전세계의 모든 관객이 각자의 역사를 통해 빈칸을 채워넣을 수 있는 의미심장한 텍스트다.
루마니아, 혹은 동유럽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아우르는 순간을 언급하는 영화의 구조는 그러나 간결하고 담백하다. 술병을 끼고 살면서 월급날만 되면 빚잔치를 열곤 하는 역사교사 티베리우 마네스쿠(아이온 사프드라우),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에 지리멸렬한 불륜까지 간직한 지방방송국 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 비르질 즈데레스쿠(테오도르 코르반),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에마노일 피스코치(미르체아 안드레스쿠)의 하루를 설명하는 것이 1막. 16년전 12월22일 12시8분 전부터 시청 광장에 인파가 있었다면 이 작은 도시에도 혁명이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비르질이, 우여곡절 끝에 섭외한 두 명의 엉뚱한 인사와 함께하는 토크쇼 분량 전체가 2막에 해당한다. 그 두 명이란 짐작하다시피 마네스쿠와 에마노일. 자신이 혁명의 주역이었다고 주장하는 마네스쿠는 이를 반박하는 시청자 전화에 시달리고, 에마노일은 내내 종이접기에 열중하는 가운데, 혁명을 회고하려던 생방송 토크쇼는 방송사고로 치닫는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에 대한 많은 리뷰는 “생존의 무기로서의 발칸식 유머를 품고 있는 영화”임을 지적한다. 실제로 단순조잡한 스튜디오를 비추는 방송카메라와 대구를 이룰법한 연극적인 정면샷을 수시로 활용하는 회화적인 화면을 채우는 것은 소소한 일상 속을 면면히 흐르는 블랙 유머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폭죽놀이에만 열중하고, 루마니아의 근대사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토만제국에 관한 시험에서 낙방한 청소년들은 대체 아는게 뭐냐는 질문에 프랑스 혁명이라고 답하며, “지금 혁명이 아니면 뭐에 대해 말할까? 인플레이션? 집시음악?”이라고 자조하는 기성세대는 상권을 장악한 중국인에 대한 분노를 생뚱맞게 드러낸다. 짧은 순간에 효과적으로 사회와 역사를 반영하며 캐릭터를 설명하는 사랑스러운 유머들이다. 토크쇼 마지막에 전화를 거는 노부인이나 에마노일에게 촌철살인의 대사를 내뱉게하는 면모에서는, 평범하게 역사를 감내하는 소시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까지 느껴진다. 인적드문 소도시의 새벽과 저녁무렵 어스름을 통해 영화를 열고 닫는, 시적인 수미쌍관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교사와 산타클로스 대행, 각각 과거와 가장(假裝)을 의미하는 두 인물로 인한 ‘방송’ 사고를 다룬 영화의 포석은 명백하고, 그 화법은 명민하다. 14살때 독재자의 처형까지 TV를 통해 혁명을 ‘경험’했다는 포룸보이우 감독은, 혁명 10주년을 기념하여 혁명참가자가 출연한 토크쇼를 보면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전후로 급격하게 변화의 물결을 경험한 동유럽의 많은 이들은 실제로 TV가 없었다면 혁명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축제는 물론이고 전쟁과 혁명까지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심지어 조장되는 시대. 축제와 혁명과 눈의 공통점은? 힌트는 영화 속 시청자의 마지막 전화에 있다. “밖에 눈이 오고 있다는 걸 알리려고 전화했어요. 지금 즐기세요. 내일이면 진창이 될테니.” 세계의 지난 역사와 우리의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진리에 가까운 진술이다. <글 : 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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