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경험하고 지옥에서 태어난 두 여자...
과도하게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순결은 그 도를 뛰어넘어 중요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런 사회일수록 남성들에 대해선 관대하다. 문제는 그런 순결의 강요가 역사적 피해자들에게까지 억압이 된다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침묵으로 인한 은폐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점이다.
전쟁 영웅인 티토를 중심으로 연방을 유지해오던 유고는 티토가 1980년 사망하면서 서서히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게 되고, 소련연방이 해체되는 등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본격적인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1992년 3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선포하지만 이는 곧 분쟁의 시작이었다. 보스니아 내의 30% 정도 되는 세르비아 계는 이슬람이 중심인 보스니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유고 연방과 연계하면서 보스니아계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소위 '인종청소'라 불리는 만행은 현대 인류의 양심에 가장 큰 생채기를 남긴 사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세르비아계가 저질렀던 '인종청소' 중에선 약 2만 명의 모슬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인 강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 전에는 마음씨 좋았던 아저씨가 옆집 소녀를 강간하기도 하고, 이웃집 여성을 10여 명의 군인들이 윤간하기도 했다. 그리고선 일부러 낙태를 못하도록 감금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만행이 계속되자 미온적 태도를 취하던 서방국가들이 개입하면서 UN군이 파견되고 1995년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서 전쟁이 끝이 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영화에서 얘기되어지듯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보스니아계 남성들은 전사라는 호칭으로 영웅 대접을 받지만, 세르비아계로부터 조직적 강간을 당했던 여성들에 대해선 피해보상은커명 사회적으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다.
우리에겐 탁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친밀한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의 한 작은 마을 그르바비차. 기록에 의하면 세르비아계의 조직적 인종청소, 강간이 가장 광범위하게 행해진 지역이며,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에스마는 전쟁 당시 강간을 당해 딸 사라를 낳게 된다. 에스마는 임신하지 않으려 배를 치기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엔 얼굴 한 번 안보고 버리려 했지만 끊을 수 없는 모녀의 정은 결국 사라를 딸로 인정하고 12년을 키워왔다. 그러나 사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내전 당시 전사한 영웅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자부심도 대단하다. 에스마는 딸의 수학여행 경비 200유로를 벌기위해 이러저리 뛰어 다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딸 사라는 아버지의 전사 증명서만 있으면 경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어머니에게 떼를 쓴다. 그러나 어머니는 차일피일 미루고, 화가 난 사라가 엄마에게 대들면서 이윽고 자신의 출생에 대한 충격적 사실을 접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에스마와 사라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있음을 전제하고 얘기를 풀어가지만 미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면 그것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니며 알고 본다고 해도 영화의 진실이 반감되는 건 아니다. 실제 보스니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감독은 세르비아가 저지른 과거의 만행이 현재까지도 치유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진행 중임을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그럼에도 그런 고발과 동감에 가장 편한 방법일 수 있는 과거 회상(플레시백) 장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대단히 우직해 보인다. 강간을 당한다거나 딸을 낳는 장면 등 과거 회상 장면이 들어갔더라면 좀 더 편하게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편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진하게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현재를 사는 에스마의 여러 모습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녀는 사람많은 버스에서 모르는 남자가 닿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치며, 술집 여성을 탐하는 군인들을 보고는 헛구역질을 해댄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술집 종업원에게 조차 "당신들은 짐승"이라며 화를 낸다. 그렇다. 그녀가 보기에 세르비아 군인, 보스니아 군인, 그리고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남성들조차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짐승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그녀가 먹고 살기위해 일해야 하는 곳이 그런 남성성이 흘러 넘치는 술집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녀는 가슴 깊숙이 숨겨왔던 그 얘기를 여성들의 모임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입으로 얘기한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정화의 의미였으리라.
영화에서 에스마는 딸 사라에 대한 애증의 표현을 몇 차례 보여준다. 귀여운 딸의 장난에 응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냉혹하게 변하면서 딸을 밀어 버린다. 그 나이에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가벼운 반항에도 딸의 따귀를 올려 부친다. 순간순간 딸의 모습에서 자신을 덮치던 그 증오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영웅의 딸이 아니라 지옥에서 태어났음을 알게 된 사라는 울부짖으며 그 사실을 부인하려 한다. 그리곤 머리를 밀고 버스에 올라 수학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버스에서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라. 에스마는 그런 딸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웃으며 떠나보내지만 이것이 모녀 사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지금보다 더욱 험난한 여정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의 아픔을 보여준 이 영화를 2006년 베를린 영화제는 최고상인 황금곰상에 선정했다. 당시 이견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영화는 그렇게 잘 만들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장면에서는 분명 밤이었다가 이어지는 장면에서 낮으로 바뀌어 있는 등 편집에서도 서툰 듯 싶다. 그럼에도 여성과 평화를 염원하는 영화의 진정성은 그 무게가 충분하다. <그르바비차>의 진정성은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했는데, 전쟁 이후 그 동안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보스니아 정부와 언론이 여성들의 피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세르비아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등 공론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라고, 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