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쿠로 : 그들이 있어 행복함을 더욱 느끼게 하는 영화
실화를 다룬 개 이야기라는 점에 끌려 보게 된 영화. 이 영화의 감독인 마츠오카 죠지는 최근 릴리 프랭키의 동명 소설인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화한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를 연출한 바 있어 과연 어떤 감독인가 하는 점에서 본 영화.
STORY
어느 산골 마을에 한 가족이 살았다. 그 가족에게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곳에 살던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버려지고 만다. 오랜 기간 그 곳에서 그들 가족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던 강아지. 하지만, 그들이 못 돌아오는 걸 알자 집을 떠나 주위를 배회한다.
아키츠 고등학교 앞, 마침 등교 중이던 료스케는 강아지를 발견하자 손을 내밀고, 녀석은 학교 안까지 몰래 따라 들어온다. 문화제 준비에 한창인 학교. 하지만 료스케의 학급은 가장 행렬에 쓰일 모형 강아지가 망가져서 곤경에 처한다. 그 때 료스케를 따라온 강아지는 이들에게 구세주가 된다. 그 후 이들은 그 강아지에게 ‘쿠로’ 라는 이름을 주고 학교에서 생활한다.
료스케에겐 코지라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는데, 이 둘은 유키코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다. 어느 날, 대학 시험을 앞에 두고 세 사람의 우정을 무너뜨린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도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것은 쿠로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료스케는 도쿄로 간다.
수의사가 된 료스케는 10년 만에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우연히 료스케는 유키코의 재회하게 된다. 둘 사이에 서먹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전해진 소식은, 여전히 학교를 지키고 있던 쿠로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 이에 학생들과 학교 직원들은 쿠로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과연 쿠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안녕 쿠로의 볼거리
- 실화가 전해주는 감동 극화
<안녕 쿠로>는 실화를 소재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적인 구성이나 파격적인 전개가 아닌 쿠로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다.
쿠로가 있음으로 해서
어떤 이는 꿈을 꾸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행복하게 하고,
어떤 이는 화해를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쿠로라는 한낯 개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그의 주위를 더 밝아지고 행복해졌는 지 모른다. 이러한 것은 아마도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또 다른 벗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다시금 마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이 있어서 희로애락의 감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았을테니까.
- 츠마부키 사토시, 아라이 히로후미, 이토 아유미 들의 앳띤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본의 젊은 배우 중 한 사람에 츠마부키 사토시의 이름은 꼭 나오곤 한다. 이외에도 나오는 아라이 히로후미는 개성 강한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이며, 이토 아유미 역시 오랜 기간 연기를 통해 항상 관심이 가는 배우들 중 한 명이다. 를이 영화는 2003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4년 만에 국내에 개봉된 영화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의 수년 전 모습을 보는 것도 그 자체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개의 인상적인 연기와 그를 담아내는 영상미
극중 쿠로가 보이는 모습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이를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 마츠오카 죠지 감독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찍기보다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서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러한 방식의 선택은 쿠로와 그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있어 감정의 폭을 더 깊이 그려내게 한다.
아마도 이 점 때문에 오는 감정의 떨림이 너무 좋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안녕 쿠로를 보고
- 반려동물, 그들이 있어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
극중 료스케에게 쿠로가 있듯 지금 내게는 항상 나를 반기는 고양이 하나가 있다. 거기에다 본가에 가면 또 나를 반기는 고양이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오히려 더 가는 길이 즐거울 때가 있다. 적어도 그들은 나를 거짓이나 배신을 하지 않고 언제나 내게 진심을 보여주는 솔직하니까. 그래서, 나역시 그들에게 진심을 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애완동물이라는 말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요즘 쓰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 삶에 들어와서 내가 더 행복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료스케에게는 쿠로가 있듯 내게는 이들이 있기에 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마지막도 함께 보아야 할 아픔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있어 행복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있어 행복함을 더욱 느낄 수 있던 영화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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