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소나기가 처마끝을 스치고 가면 곰팡이쓴 마루에서 잠을 자다 일어난 어린소년이 눈부신 햇살속으로 스며들어 맴맴거리는 성글은 숲속으로 저멀리 달아날 것 같은 느낌...
웬지 이상하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어린시절 방학때면 어김없이 커다란 배냥을 짊어지고 엄마의 손을 잡고 도시의 비장한 암울함을 등지던 나를 때묻은 손길로 반갑게 맞아주던 할머니의 포근한 시골집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어린시절 집을 떠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기억하기도 어려운 긴긴시간의 버스를 타고 이미 쾌쾌한 삵은 내가 풍길 것 같은 벙어리 할머니에게 맡겨진 도시의 어린소년은 모든게 불만이다.
이미 어릴때부터 혼자인 것에 익숙했던 소년이지만 주름으로 엉클어진 벙어리 할머니와 걸어도 걸어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하는 산골짜기의 지겨움은 아이의 외로움을 더없이 만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위급한 상황때마다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던 할머니의 모습속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깊게 깊게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감독은 여성특유의 섬세한 감정에 충실했다. 할머니의 설정을 벙어리로 배정한 것도 이미 도시에서 신랄한 언어에 익숙하고 타인의 가벼운 말솜씨에 현혹당한 스스로에게 오래전부터 말없는 따뜻함으로 깊고 깊은 산골짜기 오두막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포근함을 상기하라는 메세지 같기도 하다
더우기 할머니의 존재란 어쩌면 스스로가 무심코 그려온 강렬한 희망의 안식처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풍기면서 감독은 살며시 극장을 떠나는 관객에게 선문답을 던진 것이다.
감독은 또한 재미있는 설정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배우가 아닌 주변인을 바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분명 주인공 어린소년외에는 모두 예전에는 관객이 분명한 영화속의 인물들은 어느새 친근한 동료의식같은 느낌을 끌어내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경험했지만 어느새 가슴속에 깊게 묻어버린 아련한 추억을 꺼내어 보는 건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또한 감독은 장면하나하나에 깊은 의문과 암시를 집어넣고 압축된 감정의 절제를 그려넣었다. 마당에 할머니와 자신의 빨래를 널던 모습이나 무심코 가슴을 쓸며 할머니의 수화를 흉내내는 소년의 수줍움과 할머니를 위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엽서뒤에 그려놓은 그림은 바로 말이 아닌 가슴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감독의 순순한 설득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에서도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은 관객의 하품을 연발하게 하고 이야기의 전개의 지루함은 관객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술관옆동물원"을 연상한 관객이라면 한번쯤 놀라고 감독의 재능에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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