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일요일, 그 참혹한 현장의 기록....
영국과 아일랜드의 분쟁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1653년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798년에는 민중 봉기를 일으켰다. 그 뒤 아일랜드의 계속된 저항으로 일부 독립을 쟁취했지만, 북아일랜드의 여섯 개 주는 신교도 보호라는 명목으로 영국 식민지로 남게 되었다. 바로 1972년 1월 31일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은 영국 식민지로 남은 북아일랜드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1972년 1월 31일, 비무장 시위를 벌이던 북아일랜드 데리 시의 시민 13명이 영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14명이 다쳤다. 다친 한 명이 나중에 사망해 이 사건으로 총 14명이 죽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처벌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교들은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열일곱 살의 런던 소년이었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재현하면서 어떤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고 충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려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관객을 현장의 목격자로 만들고 있으며, 그런 만큼 더 한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최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연출한 <본 슈프리머시>나 <본 얼티메이텀>의 군중씬을 보면서 <블러디 선데이>의 장면을 떠올린 사람들이 꽤 있다. 그만큼 감독의 군중을 다루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는 마치 현장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긴박함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는다. 비폭력 평화 시위를 발표하는 아이반 쿠퍼의 기자회견과 그 어떤 시위도 불허한다는 영국군의 기자회견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일랜드 측과 영국군 측의 모습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그 형식 자체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자칫 기계적 형평으로 비판 받을 수도 있는 이런 식의 편집은 관객에게 그날의 비극을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 해석 하려들지 않으며, 그 비극의 원인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등장하는 배우의 발언을 통해 격정을 토해내기도 한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살자에 속해 있는 한 젊은 공수부대원이다. 그는 분명히 사격중단 이후 계속된 사격으로 많은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현장을 목격한 반면, 시민들 중에 총을 들고 저항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학살이 끝난 이후 그는 동료들에게 "왜 그랬냐"며 항의하지만, 영국 조사단 앞에서는 무력하게 시위대의 총격에 맞서 대응사격을 했을 뿐이라고 거짓 진술한다.
물론, 담담하게 현장을 비춘다는 것이 보는 관객의 심장까지도 담담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세련되게 윤색된 영화보다는 당시의 현장 화면이 더 큰 격정과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듯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이 영화 역시 보는 관객들을 그날 학살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울부짖는 아일랜드 유족들의 아픔에 동참하도록 만들고 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플라이트 93>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리얼리티를 높였듯이, 이 영화에서도 대부분 일반 시민들, 그러면서도 1972년 학살과 연관있는 사람들을 참여시켜 현장감과 함께 감동을 더욱 높이고 있다.
여자친구에게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시위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제리역의 배우는 최초의 희생자였던 재키 더디의 조카이며, 병원 로비에 모여 통곡을 터트린 시위 참가자 가족들 중 일부는 실제 학살의 현장을 경험했으며, 그날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영화가 주는 감동과 울분은 감독의 능력만이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살아 남은 이들의 진실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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