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좋은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과연 무슨 뜻일까? 라따뚜이는 프랑스 시골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잡탕식 요리 이름이자 ‘쥐’(rat)와 ‘휘젓다’(touille)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래서 <라따뚜이>의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쥐가 맡을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은 <토이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진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준 역할을 해왔지만, 거기에 덧붙여 픽사 애니메이션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에는 매우, 대단히 좋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라따뚜이>만 해도 주방에서 가장 꺼려지는 동물인 쥐, 그것도 시궁창에서 더럽게 사는 쥐가 최고의 요리사가 꿈이란다. 이 얼마나 기막한 설정인가.
시궁창에서 살고 있는 쥐 래미는 천부적인 미각을 소유하고 있다. 래미는 그 미각으로 동료 쥐들을 위해 일하지만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나름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꾸게 한 건 현존하는 최고의 주방장인 오귀스트 구스토가 쓴 책인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물론 구스토가 말한 '누구나'가 쥐를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었겠지만, 래미는 그렇게 알아들었고, 그렇게 되고자 노력한다.
우연찮게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 주방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 래미는 청소부로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링귀니를 만나 링귀니의 모자에 숨어 지시하는 방식으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식당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실력 없는 주방장 스키너는 우연히 링귀니가 구스토의 아들임을 알게 되자 링귀니를 쫓아내기 위해 작전을 펴다가 래미의 기지로 오히려 자신이 쫓겨나게 된다. 스키너는 링귀니의 요리실력이 사실은 래미의 실력임을 알고 래미를 잡아 링귀니에게 타격을 입히고자 한다. 그러나 래미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요리 평론가를 라따뚜이 요리로 감동시킴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영화 <라따뚜이>는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해서 처음 발표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래서 그런지, <라따뚜이>는 픽사의 기술력과 표현력에,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교훈적인 내용이 특징인 디즈니적인 이야기가 덧입혀진 느낌을 주지만, 시궁창 쥐가 뛰어난 요리사라는 기본 설정 자체의 신선함이나 의외의 결론은 여전히 픽사의 자부심이 서려 있는 듯 하다. 사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의 누구나는 영화에서 보자면 나같은 평범한 인물은 아니고, 인간이든 쥐든 상관은 없지만, 천부적 미각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들에게나 부여될 법한 찬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배경이 프랑스이긴 하지만 대단히 미국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영화가 표현하는 화면은 매우 실사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많은 영화에서 쥐는 주인공을 맡은 전력이 있다. 미키 마우스라든가, 제리, 스튜어트 리틀의 경우, 쥐의 특징을 살려 변형된 모습인 반면, <라따뚜이>의 래미는 실제 쥐의 모습 자체다. 어느덧 픽사의 특징이 되어 버린 그 세세한 털의 움직임하며... 그런데 그나마 한마리 내지는 몇 마리 나왔을 때는 괜찮았지만 쥐들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정말 온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징글징글하다.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까지 표현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픽사의 진정성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에서 래미의 첫 음식이 평범한 스프이고, 평론가를 감동시키는 마지막 음식이 역시 프랑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따뚜이라는 점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평론가가 라따뚜이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화면이 갑자기 플레시 백으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시골로 돌아가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리를 주제로한 만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그게 진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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