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잇는 한국 영화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이 대표작을 만들었던 허진호감독이 <봄날은 간다>와 <외출>에 이어 <행복>을 갖고 다시 찾아 왔다.
허진호감독을 흠모한다고 하면서 정작 지난 세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하고 어두운 경로를 통해서 봐 왔다는 것은 창피한 아이러니다.
허감독에게 사죄도 할겸 이번만큼은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평소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와 같이 가자는 말도 하지 않은채 혼자 CGV를 찾았다. 운좋게도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줄잡아 열명쯤 되어 보이는 몇 커플이 뜨문 뜨문 앉아 있는 넓은 상영관에서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지지 않기 위해 124분의 상영시간을 집중했다.
은희와 영수로 분한 임수정과 항정민은 최고의 연기자 답게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심은하와 한석규, 이영애와 유지태, 손예진과 배용준에 이은 임수정과 황정민은 허진호감독의 주연 배우 선정 감각의 일면을 보여 준다.
임수정이 과연 심은하, 이영애, 손예진의 계보를 잇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행복>에서의 임수정은 가히 최고의 역할과 최고의 연기를 보이고 있다고 봤다.
황정민 역시 두 가지 인간의 야누스적 인물 표현을 무리없이 소화해 냈다고 본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의 영정속 사진을 볼때의 충격이 다시 전해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 장면이다.
영화속 배경인 요양원에서의 생활과 배경은 회화를 감상하듯 평온하고 따스하다. 도시의 거칠고 찬란함에 대비된 단순함과 여백이 느껴지는 대목을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은희는 몇 마디 짧은 말로 대변한다.
노후 자금 4억 7천만이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죽음을 앞 둔 은희에게는 지금 현재 자기를 봐주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시선만이 행복을 주고 있음을 얘기한다.
미려한 인간을 상징하는 영수는 그러한 행복을 버린채 도시의 불나방처럼 불을 향해 뛰어들고 나중에 후회를 느끼게 될쯤에야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를 유언처럼 남기고 떠난 은희의 영정 사진앞에서 오열함으로써 알게 된다.
감독의 시각은 편안하다. 어찌보면 밋밋한 흐름이지만 긴 여운을 준다. 하루가 지난 지금쯤에서야 그때의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좋다.
<8월의..>이후 허진호 감독의 또다른 좋은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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