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난 조금 불편했다. 쉽사리 감정을 이입할 수 없었다. 반면에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원래 영화를 보다가 쉽게 우는 캐릭터라 그런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은희'가 너무 불쌍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 내가 <행복>을 불편하게 봤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싶었다.
허진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자를 따라가는 영화였다. 남자는 담담하게 사랑을 만나거나 깊게 사랑하다 이별을 한다. 그리고 겪는 감정이 그의 영화를 채운다. 하지만 <행복>에서 나는 영수의 감정을 따라갈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수의 감정과 은희의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슬프게 느끼는 일차적인 이유는 은희의 눈물 때문이다. 사랑은 변하고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영수의 감정(나는 이런 변하는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이 허진호 영화의 핵심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은 부차적으로 다가오는 애절함 정도가 될 뿐이다.
문제는 은희가 가져가는 감정의 대부분이 관습의 멜로라는 점이다. 넉넉한 듯 잘 짜여진 촬영과 좋은 대사는 간간히 이 영화를 빛나게 하지만 참으로 사랑했으나 남자가 여자를 버려 그 여자는 슬펐습니다 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전형적이다. (<봄날은 간다>의 헤어짐 역시 마찬가지의 감성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행복>에서는 불치의 병, 도시남자와 시골여자등의 전형적인 설정들이 그런 감성들을 압도해버린다. 적어도 <봄날은 간다>를 보며 울었던 나는 <행복>의 이별이 조금 지겨웠다.) 결말은 마치 <너는 내 운명>을 연상시켰다. 심지어, 말미에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의 석중과 너무 흡사했다. 나는 그의 영화에서까지 관습적인 멜로를 보며 익숙한 눈물을 흘려야 할 의무는 없었다.
원래 대본에서는 은희랑 살던 집을 나오면서 수연이에게 전화해 결혼하자고 하며 끝나버린다고 한다. 그랬던 영화가 황정민의 제안으로 도시에서 다시 피폐해진 영수와 그 뒷 이야기가 그려졌다고 한다. 영화같이 예쁘고 비현실적이었던 그들의 사랑도 사실은 흘러가는 것의 부분이었다는 원래 대본의 결말이 '진짜' 허진호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허진호의 영화였다. 하지만 뒷 이야기가 그려지면서 영화는 허진호의 영화가 아니라 관습적인 신파의 영화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독이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봐서, 별로였는가 싶었었다. 그의 영화는 집중해서 신중하게 봐야 하므로. 하지만 곱씹어 볼 수록 작품에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론가들은 허진호가 <외출>에서 다시 원래 자신의 길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도 의문을 던진다. 그는 원래 자신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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