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심형래 감독의 열정과 우직한 고집에 말없이 응원을 보내왔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멘토로 삼고자 했고, 결과를 창조하고 난 뒤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슬픈 감동을 느꼈습니다.
얼마전 무비스트에서 <디워> 최초평가 게시물을 읽었습니다. 기자들의 혹평들을 보고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아닌데 맥이 빠졌습니다.. 특히 '<디워>에서 이무기가 뒹구는 그 도시는 애석하게도 얼마전 <트랜스포머>가 이미 한바탕 했던 곳이다.'라고 비아냥 거리는 문구는 화까지 나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부족하다고 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현실과 이상은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디워>가 개봉을 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20자평을 살펴봤는데 이미 이른 시간에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은 20자평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의 최초평가와는 반대로 <디워>의 평점은 높은 점수를 달리고 있었고 20자평도 혹평보다는 호평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인정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치 내 일처럼 기뻤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마음은 반반이었습니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혹평과 'CG가 수준이 높다.'는 호평을 들은 터라 이를 염두에 두고 크게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영화관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CGV의 카피라이트처럼 (영화 이상의 감동)이었습니다! '스토리가 허약하다.', '스토리는 있으나 플롯이 없다.' 등의 혹평에 매우 빈약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이야기는 생각보다 풍부한 흥미거리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요소 요소들 간의 조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면은 있었지만 1시간 3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상영 시간과 어느 영화에서나 그런 조화의 빈약함은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크게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보다는 비쥬얼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되어 비쥬얼이 크게 적용하는 이 마당에 이야기까지 욕심을 내는 건 과도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재가 돋보였습니다. '이무기'와 '용'이라는 한국 전통의 괴수를 서양의 무대에 등장시킨 점이 서양의 괴수와는 다르게 독창적이고 참신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배우와 스탭으로 영화를 만들어 한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양 시장 공략을 위한 영리한 전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사람인 나부터도 알게 모르게 사대주의 철학이 배어있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해져있어서 <디워>에 미국 배우들이 등장하고 미국 배경이 등장하니 이무기의 위협이 국제적인 문제처럼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쉽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리한 전략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군데군데 나타나는 심형래 감독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도 충분히 재미있었고 마지막 장면에 승천하는 용과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순응하는 주인공,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아리랑'이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한'을 자극하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에 등장하는 자막은 관객들을 극장에서 일어서지 못하게 했고 관중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영화를 본 후 기립박수를 치는 영화 이상의 감동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첫 시도에서 외국에서 수십년 축척한 기술로 만들어낸 성과를 한번에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주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영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영화 산업의 불모지가 아니라 선진 문화 시장에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 영화에 돌을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 하나에 목숨을 걸고 인생을 바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응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비난을 퍼붓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비록 <디워>가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컨텐츠는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지금보다 더 세계적인 컨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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