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인간의 탈을 쓴 늑대야, 넌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어'
이 말을 들었던 주인공은 영화 맨 끝에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을 죽인다.
일반 영화라면 저런 말을 들은 주인공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번민하고, 결국 '보다 인간답게!' 이러면서 잘 살든, 주인공이 죽든, 그렇게 흘러가는데,
오시이 마모루 영화 "인랑"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철저하게 "그래, 난 인간의 탈을 쓴 늑대다, 어쩌라구, 인간이나 늑대나 뭐가 틀리다고" 이러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상자의 기본 가치관 조차도 별로 의미 없다고 주절거린다.
갑자기 이 인랑을 왜 이야기 했냐하면,
영화 "자전거 도둑"과 "인랑"은 사뭇 닮았다.
하나는 리얼리즘 영화고, 하나는 그저 SF 영화일 뿐인데, 뭐가 닮았냐고?
바로 흔히 하는 말로 '밥맛없어! 재수없어!'가 닮았다. ^^
두 영화 모두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세상은 비정하고, 냉혹하고, 빼앗기기만 해온 소시민 - 삼류는 그 세상 속에서
언제나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 뿐이다는,
더 답도 없고 더 나아갈 길도 없다는.
오래전 영화사 쪽에 관심을 가졌을 무렵, 부분 부분 봤던, 내용도 이미 다 알고 있는,
흑백 명화를 꼼꼼히 다시 봤다.
이태리 신사실주의 영화라는 새로운 영화 물골을 튼 영화다.
영화사에서 꽤나 중요한 영화다.
당시 유명배우 하나도 나오지 않는 - 돈이 없어서 유명배우를 쓸 수가 없었다 한다 - 배우의 연기도 어정쩡하고, 상업주의 관점에서 보면 참 어눌하기 그지 없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는 앞에서 소개한 인랑처럼, 그 외 수 많은 영화들에 영감을 제공했다.
딱 잘라, 참 구질구질한 영화다. 그런데, 어쩌랴, 삼류의 삶 자체가 구질구질한 것을,
그러니, 가끔 이런 영화를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이러면서 술 안주 삼아 봤다.
이 영화 맨 끝의 눈물을 흘리며, 처음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그 군중 속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찰리 체플린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참 대조적이다.
너네들의 삶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네 삶은 위대하다! 이 얼마나 끈길긴가, 더 이상 꿀 꿈 조차 없는 이
현실 속에서도 제 새끼들의 앞날을 위하여!라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청계천 8가"의 노랫말처럼.
영화 보는 내내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계속 스쳐갔다.
잘 만든 영화는 이렇게 반세기가 지나도 다음 영화에 영향을 끼친다.
여튼 나는 술로 이 씁쓸하기 그지없는 기분을 달랜다.
비록 내 전부를 잃어버려 내일 일이 막막해도, "Buon Giorno Principessa!" 이러면서
마냥 웃는 그들처럼, 술 취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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