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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탄생하기까지 우리학교
ldk209 2007-04-21 오후 4:14:31 3256   [41]

 

진심은 마음을 움직이고, 편견을 거둔 이해는 새롭고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지닌 힘은 그런 것이다. 10월 27일 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 2006의 개막작 <우리 학교>는 힘 있는 다큐멘터리다. 너무 예뻐서 오히려 슬픈 재일 조선학교의 일상을 담은 이 영화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얼핏 두서없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조리 있는 수사를 구사하며, 영화 속 그들의 삶을 넘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올해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운파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촬영감독 출신 김명준 감독은 유명을 달리한 아내를 통해 시작된 인연을, 의심 없는 진심으로 이어나간 끝에 <우리 학교>를 완성했다. 수상 소식을 동포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쁘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 친구들을 이야기했다. 길고 깊은 사연을 풀어내느라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행복한 미소는 변함없었다. 행복한 눈물과 절절한 미소의 진짜 의미를 알고 싶다면 11월2일까지 계속될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찾아주시길. 이번 기회를 놓친 분들에게 좋은 소식을 덧붙이자면 <우리 학교>는 내년 초쯤 일반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이상한 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162명인데 선생님은 27명이다. 초급부 1학년부터 고급부 3학년까지 학년당 한반씩이어서 12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는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조를 짜서, 자습이며 독서, 지각여부를 두고 경쟁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상벌은 없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수십 명인데, 선생님들은 이들에게 오후엔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고, 밤에는 함께 놀다가 잠이 든다. 최장 12년 동안 정말 열심히 배우고 운동하지만, 정식학교는 아니다. 일반 대학에 가려면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는 “이 학교에 와서 나도 바뀌었습니다. 혹시 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깡패가 되었거나 경찰에 잡혀서 소년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점수를 위해 악착같이 경쟁하는 법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이곳은 ‘혹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일본 최북단 가장 큰 섬이자 6천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조선학교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1세들은 우리말과 글을 몰랐던 자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불편이 없도록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는 80여개의 ‘조선학교’가 남아 있다. 대부분 고향이 남쪽인 재일조선인이 3, 4살까지 이어지는 동안 한반도 남쪽의 사람들에게 ‘조선학교’는 잊혀진 존재였다.- 프롤로그 자막 중에서


<우리 학교>는 이 사랑스러운 학교의 1년5개월을 담고 있다. 김명준 감독의 꼼꼼한 카메라는 이상적인 학교를 이상한 학교로 생각하는 우리가 이상하지 않은가 질문을 건넨다.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포사회의 모습도 자연스레 묻어난다.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4년 10월이지만 2002년 3월부터 서로를 알았던 카메라와 대상의 친밀감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으로 스며들게 만든 것이다. <우리 학교>는 감독이 그 대상과 3년 동안 나누었던 사랑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2년 반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조은령 감독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고 조은령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인연


한국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단편 <스케이트>의 감독으로 알려졌던 조은령 감독은 김명준 감독의 부인이었다. 아니, 김명준 감독이 그의 남편이었다. 장편 데뷔작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접하게 된 것도, 그들과 사랑에 빠진 것도, 장편 극영화의 메이킹 차원에서 <프론티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 촬영을 <꽃섬>의 촬영감독으로 디지털카메라에 익숙한 김명준 감독에게 부탁한 것도, 남한의 무관심과 오해로 인해 폐쇄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힌 조선동포들의 닫힌 마음을 솔직함과 성실함만으로 열게 만든 것도 모두 조은령 감독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고, 그로부터 7개월 만에 거짓말처럼 생사를 달리했다. 고인의 추모영화제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했고, 남겨진 사람은 울다 잠드는 피폐한 생활을 박차고 일본으로 향했다. 애틋한 얼굴이 꿈속에서 환한 표정으로 나타나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다큐멘터리 <하나를 위하여>는 둘이 함께 찍은 일본 조선학교 사람들의 모습, 조은령 감독의 일기, 그를 알았던 동포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김명준 감독은 1년 남짓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생전에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하나를 위하여>는 일종의 숙제였지만, 김명준 감독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완성한 <우리 학교>는 다르다. “화장유골의 반은 부모님 댁 근처 언덕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오사카와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묻었어요. 은령이와 나를 맺어준 것이 조선학교인데, 동포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는데, 은령이 소식에 너무 충격을 받고 같이 슬퍼해주셨는데, 결국은 미완으로 남은 거잖아요.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이야기였어요.” 새로운 조선학교를 발굴해야 한다는 욕심은 없었다. 첨예한 재일동포 문제를 다루려 했다면 오사카나 도쿄로 향했겠지만,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단독 연출작의 대상으로 ‘혹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를 택했다. 김명준 감독이 조선학교를 돌아다니던 중 유난히 인간적인 인연을 맺었던 곳이었고, 조은령 감독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기숙사의 각 방에서 묵다가 신혼 때 방문해서는 선생님들의 성화로 한방을 썼을 정도로 편한 곳이기도 했다.


“처음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나는 선생님들과는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과는 상당히 힘이 들었다. 아이들끼리의 대화 속에는 많은 일본 말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명준 감독 내레이션 중에서


꾸준한 노력으로 까다롭고 조심스러운 총련 중앙의 신뢰를 얻은 조은령 감독 덕분에 촬영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와 그들은 말이 달랐고, 처지가 달랐다.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고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말이 익숙해지는 데만 6개월이 걸렸지만, 더욱 힘들었던 건 “태어날 때부터 두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였다. 계속해서 카메라를 거부하던 친구가 “명준 오빠, 오빠가 모르고 있는 게 있다. 애들은 사실 다 싫어한다, 찍히는 거”라고 말하는 바람에 1주일 동안 멍하게 지내기도 했다(촬영 시작 1년 만에 그런 말을 들은 그 심정!). 간곡한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오해를 풀었지만,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돌아보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아쉽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어떤 곳인지 처음엔 몰랐어요. 졸업식이 끝난 뒤 술자리에서,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한 친구가 담임선생님에게 ‘내 아버지가 돼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그렇게 많은 힘을 얻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친구들과 말이 익숙해지는 데만 6개월


망설임과 답답함을 이긴 것은 따뜻한 마음이었다. 선생님들은 교무실 한편에 그의 책상을 마련해줬고, 불시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명절 연휴에 홀로 기숙사에 남은 감독을 위해 몰래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밥을 먹어주다가 결국 순번표를 들켜 그를 눈물겹게 만들기도 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포사회는 그저 극진해서, 그가 아프다는 소문이 퍼지면 학부모들이 기숙사에 음식을 날라줬다. 카메라를 든 그에게 서슴없이 다가서던 도시 아이들과 달리 멀리서 수줍어하던 아이들, 교실에 그가 들어서면 일제히 주목하던 아이들은 “이제 그 카메라가 공기 같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체육대회 때 아이들이 직접 만드는 대깃발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그의 이름이 적혔다. 행복이 아닌 어떤 말로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 울고, 슬퍼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건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김명준 감독은 카메라를 든 채로 모든 것을 배워갔다. 한 시간짜리 테이프 500개, 녹취 및 분류에만 1년이 걸렸던 분량을 촬영하면서 생각한 컨셉은 고급부 3학년들의 졸업까지의 1년을 중심으로 다루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으니, 주인공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인터뷰를 먼저 해야 하는 건지, 스케치를 먼저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조선학교 대항 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담겠다는 예상에 농구부를 계속 따라잡았지만 학생들의 대회 포기선언으로 황망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때 찍은 화면은 영화 속에서 축구부 아이들이 일본학교를 상대로 한 경기장면을 설명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됐다. 일반 일본학교 운동부와 달리 후보 선수 없이 전원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반칙 퇴장을 우려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소극적인 플레이를 몸에 익힌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담담하여 더욱 서럽다. 감독이 직접 쓴 내레이션 일체는, 그가 촬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다. 축구부 아이들과 코치선생님은 지는 것이 익숙할 법도 한데, 고급반 3학년과 함께한 마지막 경기를 패한 뒤 경기장을 떠나지 못한다. 시합 전, “싸움 되어도 지지 마라. 조(선)고(등학)생이다, 너희들”이라며 서로를 독려하던 아이들의 분한 눈물을 담으며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도 울고 있었다.


이 밖에도 <우리 학교>의 러닝타임 134분 내내, 학교의 일상과 짧은 인터뷰로 이루어진 영화는 아주 느슨하고 은근한 고리로 연결되었음에도 산만하기보다는 흥미진진하다. 고급반 3학년의 마스코트인 정신지체아 리사의 에피소드는 10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하던 중 발견한 케이스. “애들이 1학년 때부터 쭉 같이 지내서 그런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아요. 누구의 이야기를 하면서 ‘걔는 좀 그렇지 않냐’고 말하면 ‘명준 형님, 사람은 그렇게 1, 2년 안에 평가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요. (웃음) 근데 리사에 대해서는 모두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리사 덕분에 우리가 남을 도와주는 정신이 생겼다’고 말하더군요.”


“이 아이들은 축구에 재능을 지닌 아이들도 아니고 축구에 미래를 건 아이들도 아니다. 조선사람이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어렵게 실천에 옮겨주신 부모님들과,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선생님들,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는 동무들,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바로 자기들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김명준 감독 내레이션 중에서


한류 열풍도 어쩌지 못할, 조선인을 향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악감정은 막연하나마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너희 학생 중 한 마리 죽여 버릴 거야, 이런 돼지 같은 조선놈들아. 너희들은 짐승들이니까.”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전화 욕설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등교하는 모습을 편집한 장면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슬프고, 무섭다. 드물게 충격요법을 사용한 이 장면에서 김명준 감독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심각하고,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 모른다는 이야기다. 심할 때는 하루에도 몇통씩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학교 홈페이지 담당 선생님은 게시판의 욕설을 삭제하는 게 일이다. <우리 학교>를 관통하는 알 수 없는 슬픔의 정서는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학생들로 늘 시끌거렸다는 기숙사는 썰렁하고, 선생님들은 적은 월급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가며, 전교생 수는 해마다 열명씩 줄어든다. 졸업식장. 선생님과 학생들 한명 한명이 서로의 시시콜콜한 기억을 발표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뜨겁게 이별하는 모습은 부럽도록 정겹지만, 학교를 벗어난 이들이 맞이해야 할 세상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다.



한 시간짜리 테이프 500개, 녹취와 분류에만 1년


더디나마 변화는 있었다. 별도의 자격시험을 거치면 이들도 일반 사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공립대 역시 총장의 재량에 따라 가능하다. 예전엔 불가능했던 일본의 각종 선수권대회에도 공식참가가 가능해졌다. 이 학교 역기부가 처음 전국대회 진출했을 때 우리 학생이 세운 전국 신기록은 공인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당연한 걸 좋아졌다 말하려니 역시나 민망하다. 여전히 전국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다른 일본학교와 달리 숙박, 교통비는 지원받지 못한다. 외국인의 공립대 입학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외국인학교가 항의했을 때 일본 정부는 미국 및 유럽계 학교에 대해서만 이를 허용했고, 이후 중국 및 대만계까지 입학을 허락할 때까지 전체 외국인학교의 60%에 달하는 조선학교는 여전히 노골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고 김명준 감독은 말한다. 미움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가 담은 아이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모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들은 카메라가 아닌, ‘명준 형님’에게 말을 건넨다. 카메라가 있는 교실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는 학생에게 담임선생님은 일본 노래를 불러서 되겠냐고 묻고, 아이는 “자연 태를 찍고 싶습니다, 명준 형님은”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를) 의식 안 하는 쪽이 좋습니까?”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 학교> 속 아이들이 그처럼 예쁜 것은 김명준 감독이 촬영감독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정말 그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학년 초 담임 발표 시간에 선생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얼굴, 유성매직으로 얼굴에 낙서를 한 뒤 지워지지 않는다는 아이의 울상에 미소 짓는다. 운동회 대깃발의 이름을 ‘비빔밥’으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겠냐는 진지한 토론이나 수업시간에 깜빡깜빡 졸다가 자리를 바꾸자는 말에 벌떡 일어나는 아이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합창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선생님들의 묘한 신경전, 아이가 생겼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대한 아이들의 요란한 반응 등은 그저 친근하고 귀엽다.


“지나온 길 되짚어가면 힘겨운 눈물도 흐르지만/ 그대로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눈물 젖은 추억들./ 잊지 말자 너와 내가 맺은 약속을 통일되는 날까지./ 승리의 노래 함께 부를 사랑의 길에 우리 다시 만나리.”-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이 부르는 노래

 

김명준 감독은 <우리 학교>라는 지금의 제목을 촬영을 종료하기 3, 4달쯤 전에 정했다. “동포들은 조선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불러요. ‘나고야 우리 학교는 재정이 어떻습니까’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면 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주죠. 남한의 우리도 남의 학교, 북의 학교, 재일동포의 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체의 단락 구분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아이들이나 선생님의 인터뷰 도중 그 말에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가까이서 찍어놓은 화면이 풍부하지 않으면, 혹은 인터뷰이가 진심만을 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레이션과 인터뷰, 생활 속 자연스러운 장면으로만 가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예쁜 애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수상하는 동안,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은 영화의 형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극중 인물의 안부를 묻는 일이 더 많았다. 김명준 감독은 그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기뻐한다.



‘우리 학교’ 친구들은 ‘나의 아이들’이 되었다


적어도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그곳은 ‘우리 학교’가 되었고, 김명준 감독은 결국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이 옳은 선택을 해왔음을 영화로 증명했다. 그것은 또한 그가 4년 동안 잊고 살았던 촬영감독의 꿈을 기억해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의미한다. 실은 “영화현장의 조명이 그리워서 상사병이 날 정도”였다는 그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89학번이다. 대학 시절과 학생회장 선배였던 이문식, 인문대 학생회장 선배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 등과 자취하며 “4년 동안 데모만”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었던 미대를 “굶어 죽을까봐 포기”하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영화를 하면 굶어죽지 않겠다”는 생각에 재수 끝에 들어온 학교였지만 별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옥살이도 했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점, 그만큼 모자라는 학비로 졸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복학한 그는 5년 후배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영화를 배웠다. 연출할 돈은 없었지만 영화가 하고 싶어서, 뷰파인더 속 은밀한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촬영전공을 지망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C카메라로 일하는 동안 김우형 촬영감독에게 촬영의 자세를 배우면서 확신도 얻었다.


기꺼이 만들었던 4년간의 공백이지만, 이제 다시 육중한 필름카메라 옆에 서려니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꽃섬>을 촬영한 직후 곧잘 찾아주던 사람들 중 누가 다시 나를 찾아줄까” 싶은 불안감도 있다. 그러나 존경하는 촬영감독으로 “특별한 현상이나 테크닉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다른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세계에 맞춤한 영화를 찍는” 존 톨(<씬 레드 라인> 등)을 꼽는 그는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이 촬영감독의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이 영화를 통해 연출의 마음을 알게 됐죠. 내가 왜 그때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 감독이 행복하게 영화를 찍었을 텐데.” 이제는 숙명이 되어버린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을 틈틈이 다큐멘터리에 담아야겠지만, 단편과 장편, 디지털과 필름을 가리지 않고 천천히 다가서다보면, 또 다른 우연이 그를 촬영으로 이끌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로 가요./통학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중략) 학교로 가는 이 길은 그 어디에 잇닿아 있을까.” - 노래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중


설레는 마음으로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던 일본의 우익 시위대들은 여전할까. 미사일 사태 때도 상황이 험악하여 교대로 선생님들이 기숙사 불침번을 서야 했다는데 요즘처럼 수상한 시절에 아이들은 괜찮을까. 선생님이 되어 학교를 지키고 싶다던 아이의 꿈은 여전할까. 편집을 마무리할 무렵 첫돌이 지났다는 고급부 3학년 담임선생님의 딸은 우리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딧에 오른 전교생의 이름을 바라보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져 온갖 질문이 꼬리를 문다. “어서 빨리 우리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 선생님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김명준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대로 우리의 바람이 된다.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가능한, 어쩌면 최고의 마법. 김명준 감독이 오로지 카메라로 선보일 진심어린 화면, 그리고 그만이 담을 수 있는 우리 학교 사람들의 후일담이 벌써부터 그립다.

 

<씨네21-2006년 11월 10일>


(총 0명 참여)
ldk209
정말 감동적인 영화...   
2007-04-2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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