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는 < GO >의 그 학교가 아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상영관의 불이 켜지자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몇몇이 보였다. 홋카이도의 조선초중고급학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끝난 시간은 밤 10시 30분이었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그러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2일,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 2관에서는 <우리학교>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김명준(37) 감독과 같이 들어온 고영재 프로듀서는 "시사회를 제외하면 정식 개봉한 극장에서 진행하는 '감독과의 대화'는 처음이다, 조금 떨린다"고 입을 열었다. 관객들은 서서히 손을 들어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꼭 이 다큐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소재를 이렇게 극장에서 볼 수 있으니 놀랍다. 어떤 이유로 이 다큐를 제작하게 됐는가.
"이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지는데… (웃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영화감독이었고 이 다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촬영감독이 결합했고, 제작 중 둘은 결혼했다. 결혼 후 6개월 뒤 그 여자 감독(고 조은령 감독)은 세상을 떠났다.
내 실력이 부족한 탓에 개봉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촬영기간 3년, 편집기간 1년 6개월). 촬영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우리학교' 사람들이 앞서 설명한 시간동안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다. 나는 꼭 이 다큐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기간이 긴만큼 편집에 고심이 컸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1년을 충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갔다. 계절상으로는 겨울→봄→여름→가을→겨울→다시 봄 순이다. 운동회, '조국방문'(북한으로의 수학여행), 전국권 스포츠 경기 등은 아이들이 가장 신경 쓰는 행사여서 핵심적으로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추려내는 게 힘들었다. '공부할 시간이 있을까'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아이들은 행사를 많이 열었고 토론문화도 활발했다. 에피소드가 많을 수밖에. 그리고 졸업식은 매번 감동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을 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넣었고(웃음)."
고급반 3학년 아이(반장 재훈이)가 찍은 '조국방문' 장면이 기법상 전혀 불안정하지 않더라. 누가 도와준 것인가?
"그 장면은 3명이 찍은 것을 편집한 결과다. 재훈이 외에도 학교를 졸업하고 그 여행에 동행한 여성이 있다. '조국방문'을 떠나기 전 둘에게 촬영을 가르쳤다. 그리고 북한에서 그들을 안내해준 수행원이 찍은 화면도 있는데, 편지로 수행원에게 다큐의 취지를 설명하고 촬영을 부탁했다. 사실 안정적인 화면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조국방문'을 마치고 재훈이가 건네준 촬영 테이프는 17개였다(웃음)."
'조선대학교'에 가려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여주는 부분이 나온다. '조선대학교'는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으며 학생들은 그 대학을 졸업하여 어떤 일을 하는가.
"일단 '조선대학교'는 일본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대학이 아니다. 학사·석사 학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대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재일 조선인들의 투쟁으로 최근에 얻어진 성과다. 학생 중에는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교수가 된 이도 있다.
'조선대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재일 조선인 사회를 위해 애쓰겠다고 결심한 이들이다. 일본사회로 진출하려는 이들은 일본대학을 갈 것이다. '조선대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한 지역에 있는 같은 민족을 돕는 등 동포를 위해 헌신하려는 학생들이다."
일본 우익들의 재일 조선인 탄압에 대한 내용이 예상 외로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다 보여주기엔 상영시간이 너무 제약받아서…(웃음). '일본'이란 하나의 개념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일본사람 중에서도 재일 조선인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지만 여하튼, 지금 현재 일본 사회가 가하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탄압은 심각한 상황이다. 우루마 이와오(漆間巖)라는 사람은 '재일 조선인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들을 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는 현재 일본 경찰청 장관이다. 그런 인터뷰가 신문에 버젓이 실리는 사회가 또한 현재 일본이다."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사상교육이 아닌가?"
운동회 행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인공기를 운동장에 걸면서 "우리나라 깃발"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에도 드문드문 북한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사상교육'을 받는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이 나라에서의, 한국에서의 교육은 사상교육이 아닌가? 과연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이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나 자신도 '잘 살아보세'로 요약되는, 물신숭배를 강조하는 새마을운동의 정당성을 주입받고 전두환 등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의 교육은 또한 반북이데올로기도 끊임없이 퍼트리지 않았나.
'우리학교' 학생들이 북한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동조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듯, 재일 조선학교들이 처음 생길 때 비용과 교과서 등을 지원하며 북한은 조선학교의 건립을 도왔다. 그때 한국은 '일본 동포의 문제는 일본 동포가 알아서 해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하며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재일 조선인 1·2세 들은 한국을 원망하고 북한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인식이 3·4세까지 일정정도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인식이 서서히 깨져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학교'의 교육과 학생들의 생각 중에는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교육'을 계속 받고 자라난 나도 변했듯, 이 학교 아이들도 자라나며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다. 한국방송을 케이블TV로 끊임없이 시청하고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가 <주몽>이다. 게다가 그들은 한국 각 지역의 특산품과 지리적 성격을 계속 외우고 시험을 치르며, 사상교육이 아닌 진정한 통일교육을 받고 있다."
<GO>라는 작품으로 재일 조선인 학교를 처음 알았다. 그래서 소위 '조총련계 학교'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학교>에 나오는 '이 아름다운 학교'가 <GO>에 나오는 '그 암울하고 어두운 학교'가 맞는가 싶더라. 다른 재일 조선인 학교들도 비슷한 분위기인가.
"먼저 <GO>가 재일 조선인학교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말해야겠다. 현재 자신들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구시대 재일 조선인학교를 다루면서, 마치 현재의 상황도 그러한 양 독자들을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우리학교' 아이들은 생각이 너무 건강한 학생들이다. 내가 촬영 중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울 때, 아이들은 나를 에워싸고 '담배를 왜 끊어야 되는지'에 대해 1시간 동안 얘기해주는 아이들이다(웃음).
<GO>를 만든 작가 분(가네시로 카즈키)은 70∼80년대에 '딱딱하고 무서운' 민족교육을 받은 분이다. 그리고 졸업하지 않고 중도에 재일 조선인 학교를 그만둔 사람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본다면 <GO>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작품일 수 있다. 실제 '우리학교' 운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부모님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재일 조선인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90년대부터 시대가 변하면서 재일 조선인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것이다. <GO>에서 보여지는 딱딱한 군사교육과 암울한 분위기는, '우리학교'는 물론이고 현재의 재일 조선인 학교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학교>를 찍으며 너무 행복했다"
▲ <우리학교> 김명준 감독과 고영재 프로듀서(왼쪽부터)
평화와 자주라는 단어가 학생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나오고 또 실생활에서 배어 나온다. 탄압과 외면 속에서도 이렇게 학생들이 건강하게 자란 교육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12년 동안 계속 같은 학급에서 쭉 살아온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또한 '선생님이 학생들을 보내는' 다른 학교와 달리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낸다'('우리학교'의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교원들은 대부분 젊으며, 결혼 후에는 다른 직업을 찾는다). 학교의 사정이 어려운 것을 잘 아는 학부모들이 콘서트를 열어 모은 돈으로 학교에 보태는 등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선생님들이 학생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말이다.
사실 나도 정확한 '비결'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학교>를 찍으며 너무 행복했을 따름이다. 찍으면서 교장 선생님께 '여기서 살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 그는 '영화나 찍으라'고 답했지만(웃음)."
3년 동안 '우리학교' 학생들과 같이 생활했으니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다른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는가.
"에피소드는 너무 많고 인상적인 캐릭터는 한 명으로 콕 집어서 얘기하기가 어렵다. '우리학교' 학생 중에는 졸업 후 한국으로 유학을 온 친구도 있다. 블로그에 '우리학교 선생님들을 소개합니다'란 코너를 만들어 연재하고 있다. 계속 연재를 하고 다른 이야기들도 올리려 하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잘 못하고 있다(웃음)."
<오마이뉴스-2007년 4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