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가 암살당했다. 그 기사는 분명 세계 각국의 유수 일간지의 일면 톱을 장식할 것이고 그 시간직후 전세계의 언론에 속보로 전해질 것이다. 이는 마치 9.11테러당시 무너지는 뉴욕무역센터를 바라보는 것처럼 커다란 충격을 줄 것이다. 물론 그 속보앞에 쾌재를 부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영화는 허구적인 다큐멘터리이다. 모큐멘터리(mocumentary) 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라고도 불리는 이 영화는 극중에서 과감하게 자신들의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암살시킨다. 과연 이영화는 왜 조지 부시를 죽였을까. 그의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으로? 그건 마이클 무어적인 마인드에서는 가능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이클 무어의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허구를 매개로 우리가 확인하고자 했던 진실들을 드러나게 한다.
인터뷰장면과 실사적 영상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며 영화는 진행된다. 그것은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이다. 사건과 관계된 이들이 등장해서 진술하고 증언을 하고 그 현장의 모습이 담긴 화면이 이어져 나오며 그 상황을 설명하는 육성이 그 화면위로 오버랩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장면들이 연출된 장면이고 부시의 모습이 담긴 것은 실제 시카고의 경제 포럼에서 행해진 연설장면이다. 그리고 실제장면과 연출을 특수효과를 통해서 하나로 완성시키면서 이 영화의 진짜같은 거짓말은 생명력을 얻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들려오는 어느 아랍여성의 목소리는 분명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는 누군가를 원망하듯 말한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한번 더 생각을 했어야했다는 것으로 보아 어느 누군가에게 총을 쏜 이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총을 맞은 누군가는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목격하고 싶은 누군가의 죽음과도 밀접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방아쇠를 당긴 누군가의 정체는? 혹시 알카에다? 아랍계의 테러조직단? 우리 역시 의심의 주파수가 중동쪽으로 쏠린다. 하지만 영화를 마지막까지 목격하게 된다면 우리가 알게되는 진실은 너무나도 기가 차다.
아랍계 미국인 여성이 자신이 반미적 동족애와 얼마나 무관한지,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미국적인지를 설명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에서 부시를 향해 아슬아슬할 정도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다름아닌 미국인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는 항거 수준이 아니라 마치 그를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리무진까지 돌진해가려고도 한다. 물론 그것이 미국인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부시 정권이 극단적인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단지 미국 바깥의 타국인들만이 아닌 자국인들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하지만 그의 측근 보좌관들에 따르면 그는 꽤나 성실한 대통령임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가 행하는 정책노선이 그 수고와 무관하게 반발을 사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정받아야 되는 부분과 인정해야 되는 부분에 대한 일종의 권고와도 같다.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안에서의 노력과 그 노력과는 무관한 결과적 문제. 우리가 조지 부시를 보는 일방적인 태도와는 다른 국면에서의 관찰.
물론 영화가 살피고자 하는 측면은 그 부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제목의 상황으로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것 그 자체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부시를 죽여버린다. 두발의 총알에 의해서 미국의 대통령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간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내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영화에서 부시의 죽음은 마치 뉴욕무역센터의 붕괴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그 아랍계 여성의 말처럼 9.11사태는 미국으로써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첨단을 달리는 그들의 국방네트워크가 삽시간에 무너진 것은 자신의 안방이라는 홈 그라운드적 방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픽션이지만 영화에서는 진실로 치장되는 부시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철통과도 같은 보안이 이루어졌다고 믿지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고 부시는 죽는다. 대통령의 경호와 보안이 완벽하다고 믿지만 그 빈틈은 예상치 못하게 결과로 증명된다. '어쨰서 그것 하나 막지 못했던 거죠?'라고 묻는 아랍계 여성의 말은 그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꼬집는다.
영화는 대통령의 죽음이후 체니 부통령이 그의 자리를 메꾸는 과정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후 대통령의 죽음이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구도로 이용되어지는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처음 용의자가 되었던 단순한 시위대의 선봉장일때만 해도 부시의 죽음은 개인적인 불만이 사회적 연대를 통해 발생한 자국적인 사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번째 용의자가 발견되면서 이는 국제적 성격의 국가 대립으로 번진다. 마치 시리아에 선전포고라도 하듯 일방적으로 사건을 진전시켜나가는 양상을 9.11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가하고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던 미국의 모습이 연상된다. 영화는 그런의도를 더욱 확실하게 되새김질해주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번쨰 용의자인 이라크 참전 재향군인을 통해서다.
그는 아버지떄문에 군인이 되어서 형과 함께 이라크로 파병을 나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오지만 형은 그곳에서 폭탄으로 뒤집힌 험비안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인터뷰를 통해 진술되는 이라크의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전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는 그 목표물도 찾지 못한채 헤매이고 있고 그곳에서 여전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새로운 명분인 평화유지는 죽어나가는 이라크인과 미군의 숫자가 무색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 그 모든 시나리오는 박살나고 몰염치한 국가의 행태는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이는 9.11사태이후 미국의 대외국가적인 정치적 노선의 흐름이 지니던 치부를 파헤치는 작업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무너진 뉴욕무역센터를 어떻게 이용했는가, 그리고 그 무너진 뉴욕무역센터로 고취된 애국심을 부시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이그러진 경제적인 대외 정치노선에 활용했는가. 이 규명되지 않은 진실을 가식의 옷을 벗겨 스크린 가운데로 내몰아낸다. 마치 국내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지역감정을 자극하듯 아랍계와 서구의 분열 역시 정치적 이익관계로 인한 조장과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고 있다고 스스로 연설로 주장하는 부시의 말이 자기기만인가를 드러낸다. 미국과 세계의 시민의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는 그는 결국 전쟁을 조장하고 자국민마저 사지로 밀어내는 이기적인 정치성의 표상일뿐이다.
이 영화는 픽션이다. 살아있는 자국의 대통령을 죽임으로써 그 허구의 극단적 극치를 획득하는 영화는 단순히 부시 증오에 대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저주 영상이 아니다. 영화에 대입되는 직접적인 인물과 상황은 허구지만 그 상황에서 드러나는 공식은 진실에 가깝다. 부시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진실. 그것이 이 영화의 살해가 의도하는 가해자의 궁극적 목적인 셈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죽인 자는 말이 있는 법이니까.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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