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chic)하다. 언제부턴가 쿨하다는 버터류 상큼언어를 대체하기 시작한 이 독일산 어원의 단어는 패션용어를 뛰어넘어 트렌드의 업다운을 논하는 용어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적이면서도 세련된 풍미를 한마디로 딱 잘라말하는 이 단어는 그 발음만큼이나 새침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만 같다.
이 영화는 그 도시적인 시크함을 그대로 표방한다. 인트로부터 민준(엄정화 역)의 나레이션으로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은 마치 뉴욕에서나 보이는 것만 같은 이국적 풍경과도 같이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이 한국말을 듣지만 영어로 화답하는 로빈(다니엘 헤니 역)의 모습은 대한민국 서울이 이미 글로벌 세계에 진입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이라도 되는 것만 같다. 물론 그런 기묘한 언어소통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다니엘 헤니의 미숙한 한국어 실력이 이 영화의 장치적 설정으로 무마시켜도 합당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어설프게 망가지고 매사가 꼬이기만 하는 민준의 모양새와 그런 그의 앞에 떡하니 떨어진 퍼펙트한 남자 로빈. 제목만 봐도 알 것 같은 그녀의 연애성공기에 대한 고백담은 이미 목표와 목표물을 그 자리에 제대로 설정해놓았다. 결국 관건은 과연 그들이 사랑하기까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어떻게 엮느냐에 달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듯 다 주고 싶은 게 왜 나쁜건데'라고 말하는 민준이 '사랑은 감정의 권력게임'이라고 믿는 로빈에게 감정을 품는 것은 사실 감정이 수반되기 이전의 복수적 쟁취욕에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콧대를 꺾기 위해 무릎을 꿇게 만드려는 그릇된 심산에서 이 영화의 로맨스는 엇박자의 출발을 보이며 우발적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일단 영화는 제목의 Mr.로빈을 그냥 다니엘 헤니로 적용해도 될 것 처럼 다니엘 헤니 그자체를 로빈으로 붙여넣기한 모양새처럼 여겨진다. 한국어에 서툰 다니엘 헤니 덕분에 우리는 그의 대사를 외화를 보듯 자막으로 읽으면 된다. 이는 그의 이국적인 선이 살아있는 외모만큼이나 혹은 이 영화의 비서울적인 관상의 도시처럼 색다른 묘미를 준다. -엄정화가 헤니의 매끈한 관상에 빛이 바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하지만 영화의 이국적 자태는 영화만의 확고한 색깔을 보장하지 못한다. 미장센의 보좌에 머물뿐 영화를 관통하는 그릇감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를 어디에도 끼지 못하게 만드는 어중간한 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 영화가 논하는 사랑공식은 중반부에 이르러 점차 본연의 태도를 잃고 방황한다. 단호하고 냉정한 로빈이 세련된 시크함으로 연애의 게임론을 펼치다가 감정에 흐트러지는 상황에 봉착하는 것은 이 영화가 스스로 특별한 척했지만 결국 다를 것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결코 사랑은 시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영화적 진실인지 한계인지의 구분을 나누기에 이 영화의 화법은 잣대가 어중간하다.
물론 연말연시 혹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로맨틱 영화로써의 자질은 충분하다. 그 궤도안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을 찾는다면 이 영화는 그리 나쁘지 않은 크기의 그릇이 된다. 물론 다니엘 헤니의 조각같은 외모에 감탄을 연발할 애인으로부터 질투심을 유발할 남성 관객들은 재고해보아야 할 사실이겠지만.
이국적인 미장센으로 색다른 사랑론을 모방하려는 듯 했지만 그 결과는 결국 별 다를바없는 무색함이 발견된다. 물론 이는 사랑이란 게 결국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핑계로 무마되는 듯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드러내는 한계적 뻔뻔함을 가리기에는 무색한 변명이다. 마치 사랑도 시크할 수 있다고 잰 체하던 태도가 싹 돌변하는 모양새는 그 반대를 입증하기 위한 행위였던가 하는 핀잔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것 같다.
-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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