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로 가는 길] 미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
2006년 제56회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현실의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철없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 젊은이 5명은 친구 결혼식 참석차 파키스탄에 갔다가 미군의 폭격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네인지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관광을 떠난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보다 빨리 미군의 폭격은 시작되었고,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곳은 하필이면 탈레반의 가장 강력한 저항 지역.
이들 젊은이들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량을 구하지만, 의사소통의 문제였는지 차량은 이들을 탈레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는 곳을 따라 트럭에 타고 움직이다 이들은 탈레반과 함께 북부동맹에 생포되어 미군에 넘겨진다.(트럭에 포로들을 가득 몰아 놓고 밖에서 무차별 난사를 한 다음 살아남은 포로들만 넘기는 생지옥) 미군은 정보 취득을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포로를 선발하고 이들은 드디어 자신들이 영국인임을 얘기할 기회를 얻는다.
영국인이라고 하면 미국인들이 도와주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은 곧바로 이어진 가혹한 고문 속에 묻힌다. 관타나모 수용소로 옮겨진 이들은 무려 2년 이상 짐승과 같은 고문과 학대를 견뎌내야 하는 지옥을 경험한다. 미군이 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탈레반임을 인정하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지붕도 없이 그저 철조망으로 둘러 쳐진 감옥. 이들은 간단한 운동조차 허용되지 않는 수용시설을 감내하다가 건물 안 수용소로 옮겨지자 호텔 수준이라며 비아냥거린다. 미군은 멀리서 찍은 흐릿한 사진과 동영상을 근거로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이 있었다며 윽박지르기도 하고, 친구들의 거짓 진술서를 들이대며, 가족의 안위를 들먹이며 탈레반임을 인정하라고 협박한다. 수시로 행해지는 구타와 함께.
이들의 존재가 영국에 알려지면서 영국 언론과 가족들의 탄원이 제기되고, 사진과 영상물이 촬영될 당시 이들이 영국에 있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제공되자 더 이상 미군은 이들에 대한 불법감금을 포기하고 석방시킨다.
이 영화는 중간 중간 실제 인물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장면과 전문 배우들이 찍은 영화를 절묘하게 섞어 놓는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절묘한 결합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전작 <인 디스 월드>에서도 보여준 바가 있다고 하는데, 그 때보다 더욱 세련되어지고 더욱 충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은 너무나 절묘해서 마치 잔혹한 인간극장처럼 실제로 당시의 상황을 촬영한 듯 하고, 이토록 인권이 무시되고 탄압받는 상황에 몸서리가 처질 지경이다. 너무 잔혹하다고? 너무 직접적이라고? 이 영화가 영국 TV에서 방송되고 나서 영국 시민들이 들끓기 시작했고, 결국 블레어 총리는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부시 행정부에 촉구하게 된다. 바로 이게 영화의 힘이다.
그렇다면 부시는? 관타나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인권 유린 행위가 아니라 테러 용의자에 대한 심문일 뿐이라며 기지 폐쇄를 거부하고 있다. 이게 바로 미국의 힘이요, 남이 하면 인권유린, 자기들이 하면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성의 가장 적나라한 사례이다. 관타나모에는 아직도 500여 명의 수감자들이 영화에서처럼 매일매일 고문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 중 테러가 인정된 수감자는 단 1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한 인권 걱정하랴, 중국 인권 걱정하랴, 중동 국가 인권 걱정하랴. 다른 나라 인권에 너무 걱정이 많은 미국. 일국의 대통령이 테러 용의자에 대한 인권 침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미국이 다른 나라 인권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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