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04 집,혼자
아아 강렬하다. 예전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라는 영화를 봤을 때도 이런 식의 몰입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다른 일체의 것을 멈추고 영화 속으로 쑤욱 들어가게 되는 현상. 철저히 등장인물이 주가 되는 영화다. 주인공의 착한 얼굴에 영화 내내 속고 있는 기분이 된다. 왜냐면...왜냐면...늙은 여배우인 준은 너무 순한 눈을 하고 착하게 생긴, 집착 강하고 제멋대로인 완전 다혈질 성격의 레즈비언이니까.
준이 너무 사랑해서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괴롭히고 싶을 정도로 아끼는 준의 여자 애인 앨리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쁘장한 인형들과 다를 바 없다. 준이 앨리스를 너무 너무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데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앨리스의 의중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사랑하는 것 같은데도 결말에 가서는 자신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줄 능력 있는 또 다른 여자 머시에게 가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은 아니었다는 것인가? 사랑하지만 결국 자유를 선택했다는 것인가? 아- 헷갈린다. 어쨌거나 앨리스에게 새로 주어진 자유는 지금까지 오랜시간 자신의 날개를 부러뜨려 옆에 두려 했던 준의 사랑보다 훨씬 달콤했던가 보다.
마지막 부분은 아직도 영화의 잔상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특히 머시가 힘이 바짝 들어간 혼란한 눈동자로 비스듬이 누운 앨리스와 벌이는 애무.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의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기막히게 강렬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마시고 보았다. 아 나는 지금 농밀하고 깊숙한 인간의 뜨거운 감정, 그 태풍의 눈 속에 있구나.
엔딩, 준이 언제나 하던 대로 남자처럼 다리를 모으지 않고 앉아 서럽게 운다. 중년의 아줌마가 인형처럼 예쁘고 발랄했던 애인을 잃고 막 우는 모습을......글세.....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는 곤란함. 그저 자신의 성질대로 스튜디오의 집기들을 다 때려 부수고 그 와중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 늙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더 서러워졌달까.
감독 : 로버트 알드리치 / 1968년도 영화
ps...포스터......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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