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영화.
점점 지진의 발생빈도가 늘어나는 일본. 미국에선 일본이 40년 안에 침몰할거라고 하지만, 타도코로 박사는 자체조사로 앞으로 338일 후에 일본이 침몰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 발표한다. 타도코로 박사의 결론은 점점 사실로 다가오고 결국 박사는 일본 플레이트에 폭탄으로 구멍을 뚫어 끌려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제안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는 일본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세계 각국의 굴착선들을 끌어모아 폭탄 설치를 시도한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고 한국에서도 개봉 첫주만에 승승장구하던 <괴물>을 2위로 밀어내고 47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는 한국에선 당연히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이 침몰한다니! 분명 이를 통쾌하게 생각한 사람이 상당 수 일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 일본 무너지는 꼴 좀 보자'라고 생각하며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분명 실망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확신한다.
200억원이라는 일본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영화는 재난 영화답게 상당한 CG를 보여준다. <스타워즈>의 CG팀이 투입되었으니 이정도는 나와야지. 그런데 기대했던 CG는 예고편에서 보여준것이 다였다. 그 이상은 없다. 이 영화의 감독 히구치 신지는 과연 무엇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 것일까. 일본의 침몰? 아니면 오노데라(초난강)와 레이코(시바사키 코우)의 로맨스? 아니면 이런 초자연적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 셋다 아니다. 주제가 없다.
최근 반일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을 닮은 영화상의 총리는 굉장히 인간적이고 정의감에 넘치는 인물로 묘사된 것은 한국인으로서 조금 불만이다. 영화에서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초난강과 시바사키의 로맨스. 감독은 정말 왜 이런 장면을 여기에 넣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뇌를 뒤엎는다. 극중의 인물들은 상당히 진지하고 아름답고 슬픈데 어이없는 웃음이 나는 이유는 뭘까. 이 두 주인공의 감정관계는 정말 미스테리하다. 결정적으로 둘이 너무 안어울린다.
영화는 그래도 대형 스펙터클 재난 영화답게 스케일이 큰 장면에서는 대규모 CG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지진, 화산폭발, 해일, 수중폭발 등등 여태 재난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은 대부분 나온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한창 졸릴쯤에 한번쯤 나온다는 것. 200억은 좀 모자랐나보다. 재난 해결방법의 과학적 오류들은 그냥 넘어가겠다. 그냥 오락영화로 보는게 낫겠다.
간간히 나오는 재난장면을 빼면 시체도 이런 시체가 없을 정도인 영화가 일본에서는 흥행돌풍이라니 믿기지가 않다. 사실 일본도 이런 대규모 CG를 동반한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아 궁금하기도 하고 하니 본 사람이 많을 법 하지만 상영 일주일 정도쯤 되면 입소문이 상당히 퍼질텐데도 승승장구 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니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서가 다를지도 모르고. 개인적으로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기대값 못한 영화다.
일본은 고예산 영화들은 거의 참패를 면치 못한다. 그런 징크스를 깨고 상당한 흥행을 한 영화였고, 제목도 맘에 들고, 재난영화라는 점도 좋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이정도 였을 줄은 몰랐다. 차라리 간간히 나온 재난 장면만 모아서 나오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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