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은 마치 따로 떨어져나간 기억처럼 각인되어있다. 물론 그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CNN의 발빠른 실시간 보도를 통해 우리는 뉴욕 한복판에 자리하던 세계무역센터가 거짓말처럼 주저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속 장면처럼 뉴스 카메라를 통해 감독도 배우도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관객처럼 바라보며 멍한 충격에 잠겼다.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고 펜타곤도 부서졌다. 3대의 비행기는 아랍계 하이젝커들의 의도에 의해 본래 목적지를 상실하고 민항기가 아닌 대형살상무기가 되었다. 어쨌든 그 모든 상황은 제3자에 속하는 우리에게는 상당한 볼거리였다. 물론 인간적인 연민에 묶여서 환호하는 이는 없었다 할지라도 분명 어떤 할리웃 블록버스터의 가공할 CG가 재연해낸 가공현실 따위로는 범접할 수 없는 스펙타클함 그 자체였으니까. 그것도 세계 최고의 국방력을 자부하던 미국의 경제 심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그들의 자존심이 암살된 듯한 정서적 충격까지.
그날 하이재킹당한 비행기는 총 4대였다. 무역센터에 희생된 2대와 펜타곤에 희생된 1대, 그리고 펜실베니아에 추락한 나머지 1대. 물음표는 그 나머지 1대에 찍힌다. 다른 비행기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을 때 그 나머지 1대는 어째서 허허벌판의 의미없는 목적지에 추락했을까. 추락한 비행기에 대한 진실에 대한 플래쉬백. 그 기억의 추적에 우리까 찍어야 할 느낌표의 지표가 제시된다.
코란 구절을 낭독하는 사내. 이 사내는 분명 충실한 알라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그에게 시작을 종용하는 사내들. 이들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그래. 이 영화는 분명 9.11테러의 한복판에 둘 시선 그 자체를 이미 예고했다. 이들은 분명 그 날의 잊을 수 없는 사건의 주모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숭고한 -물론 타인에게는 미친 자의 소행으로 치부되겠지만- 신념의 완성을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한다.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자신들 중 일부가 그날 죽음이라는 목적지로 향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주변에 저승사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의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순간을 재생시킨다. 마치 찌그러진 블랙박스 안의 어그러진 기록을 해석해내듯 차근차근 그 날의 모든 기억들을 짚어간다.
행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영화에 대한 관습적 오해를 지녔다면 한번쯤 풀어줘야 할 필요가 있겠다.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이 영화에 가득할 것이라는, 혹은 그 치열했던 순간에 대한 긴장감이 극도로 치달을 것이라는. 하지만 경고하자면 이 영화는 마치 리얼 다큐의 현장처럼 묵묵하고 세세하다. 감정의 과잉 따윈 없다. 다만 그 상황에서 발산되는 충격과 목격한다는 행위로부터 빚어지는 개인적인 감상이 따를 뿐이다. 이 영화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보는 행위와 그 행위 이전에 존재할법한 그날의 기억, 즉 거대한 껍데기 안에 비어있는 사소한 진실을 채워주는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은 뉴스를 통한 그날의 결과물이었다. 이 영화는 그 날 그 현장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처절했던 기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외관적인 결과물의 내부에 존재하는 또다른 진실에 대한 묵과된 기록을 펼쳐놓는다.
중요한 것은 그전도 그후도 아니다. 반목된 아랍과 서구의 대립과 9.11 이후 벌어진 자작극 논란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논란은 이 영화의 감상에 필요없다. 중요한 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목격 행위다. 과연 그 순간 죽음으로 예정된 목적지를 향하던 비행기 안에 탑승한 승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진실된 탐구가 91분의 시간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자신들의 비극에 떨고 두려워한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굴절된 신앙의 공물을 바치려는 납치범들을 제압하는 멋진 슈퍼 히어로 따윈 없다. 기적처럼 최악의 순간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하는 시나리오도 없다. 그들에게 남은 건 죽음을 기다리느냐 죽기전에 마지막 시도라도 해보는가의 발악같은 선택만이 남아있을뿐이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올 수록 초조함이 더해지고 긴박감이 흐른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로 마지막 안부를 물으며 흐느끼는 그들의 모습은 애잔한 슬픔을 느끼게 하면서도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비장함을 더한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음을 알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 자신들의 이탈된 항로를 바꿔보기 위해 내달린다.
이미 돌아가버린 시간을 역류할 수 없듯 영화는 예정된 결말을 돌이키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날에 대한 짧막한 뉴스속보가 아니다. 그 순간에 존재했던 이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사실과 다를 바 없는 영화의 결말은 중요치 않다.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침묵의 기록. 그것을 목도하는 행위. 그 행위자와 목격자 사이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만남 그 자체가 이 영화의 순수한 의도이자 진실이 갈망하는 관심욕구가 아닐까. 무역센터가 붕괴되고 펜타곤이 부서졌다는 가쉽보다 중요한 건 최후를 예감해야 했던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작은 애도가 선행되어야 함이 우리의 인간적 고민의 순서찾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아는 배우는 이 영화에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이 영화가 비상업적 목적을 띠고 있음에 이유를 두기 보다는 이 영화에서 뚜렷한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점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상황을 제압하고 안도할 수 있는 해피엔딩을 만들어 낼 위기의 영웅따위는 영화 밖의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는 것. 어느 한 사람의 가공할 능력으로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되돌리긴 힘들다는 것. 두려움에 떠는 그들이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 의지이자 생에 대한 욕구라는 것.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행위는 결코 영웅적이지 않은 진솔함을 머금는다. 또한 실제 9.11테러당시 미 연방항공 책임자였던 벤 슬리니와 미북동 지역 방공사령부 제임스 폭스 중령 등의 관계자가 직접 자신을 재현했다는 것도 이영화의 기억에 진실성을 얹는다.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진실에 다가갔던 폴 그린그라스 감독의 탐구력은 좀 더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워졌다. 마치 블랙박스안의 기록을 씹어삼키듯 봉인된 기억을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헤치는 그의 화법은 관객을 차근차근 첨예하게 진실에 대한 침묵스러운 애도의 장으로 잠기게 한다.
코란을 믿는 알라의 아들들도 성경을 믿는 야훼의 자식들도 모두 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신은 없었다. 과연 신은 그들의 기도를 들었을까. 그곳에는 어느 누구의 구원도 존재하지 않은채 비통한 잔해만이 뒹굴었다. 과연 그들의 신념은 누구의 편이었던가. 결국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인간으로써 지녀야하는 신념과 갈망되는 마지막 생애의 욕구 한가운데서 발버둥치던 이들의 모습이 처절한 건 그들이 그토록 믿고 서로를 경멸하게 만든 믿음의 행위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믿음에 대한 배신보다도 그런 믿음에 인간을 보지 못한 채 사는 주변의 모습이 더욱 처연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아닌가.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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