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울고 있다.
받아들이기 싫다고,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냐고...
그녀는 울부짖는다.
스물 여덞의 인희는 평범한 여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결혼도 하고 싶은 그런 평범한 여자이다.
어느 날 몸이 아파왔고 가족들도 사고를 당한다.
어느 곳을 찾아가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당 이해경에게 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어야 할 팔자라는 것이다.
내가 왜... 내가 왜...
한편 촬영팀은 두 명의 사람들을 더 만난다.
암에 걸려 투병중인 40대 여인 명희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겨우 여덞 살의 나이인 동빈...
그들 역시 무당이 되어야 할 운명이다.
원치 않지만 그것이 신의 뜻이라서 무당이 된 사람들...
오늘도 구슬프게 굿이 한판 벌려진다.
인간도 싫다, 사람도 싫다... 그래도 또 울고가자!
그들은 신도 아니다.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신과 사람 사이의 중계자이다.
무당은 오랜세월 한국 무속을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무당은 자신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자대손손 화를 면치 못할 것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무당은 아마도 위에 신문광고에 나오는 060 ARS 점집 광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무당은 대충 때려맞추는, 그리고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일부 무속인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도 희노애락을 느끼고, 그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창재 감독의 다큐맨터리 "사이에서"는 인간과 신사이에서 살아가는 무당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평생 작두타고 방울 흔들면서 살아야 할 팔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이라고 이 삶을 포기하고 싶지않았을까? 벗어나면 또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선택이라는 것이 없다.
이 다큐는 황인희라는 평범한 여인의 초보 무당이 되는 과정을 숨김없이, 과장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나 대화때 보이는 무선마이크가 거슬릴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모습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댜큐 속에 등장하는 해경 역시 어린 자식을 잃었던 어머니였고 잘나가던 공장을 접고 무당의 길로 들어선 운명을 지닌 여성이다.
그런면에서 이제 스물 여덞 밖에 되지 않은 인희를 바라보는 해경의 모습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작품에서는 4명의 인물이 나오고 그리고 이들의 손이 비춰진다.
평범한 사람의 손이지만 그들은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손은 많은 것을 의미하게 만든다.
"사이에서"를 봤다면 아마 이 작품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박기복 감독의 "영매"(2002)...
나는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당시 이 작품이 서울의 작은 극장들에서 상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더불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영매"가 배우 설경구의 나레이션으로 제 3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봤다면 "사이에서"는 이창재 감독의 본인의 나레이션으로 보여진다. 직접 관찰한 그들의 모습...
다니엘 고든의 "어떤 나라" 역시 감독의 관점에서 감독의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볼 때 이 작품은 바로 가까이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 또한 감독이 의도했던 바일 것이고 말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내림굿의 거의 모든 코스를 밟은 인희는 무당이 되었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갔다는 자막이 어둠속에서 갑자기 흘러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당으로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고 시련이라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물리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은 제자리에 와버린 꼴이 되었다는 것...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들의 행위나 모습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또한 발전해도 인간의 불안함, 그리고 한(恨) 맺힌 영혼, 한 맺힌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는한 이들 무당은 계속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PS. 이 작품은 CGV 인디영화관에서 9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 작품을 같이 보고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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