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그렇고 그런 영화들 사이에서
도발적이고 정말 제멋대로인 영화가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이 한국에서 비이상적으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냥 자신이 '정상인'이라면,
동방 예의 지국의 교육을 성실히 잘 밟은 사람이라면,
평범하다면,
절대 이 영화 보지 말 것!
자신이 특별하다고?
다시한번 돌이켜 생각해보라.
자신이 정말 특별한 것인지, 특별한 척을 하는 것인지....
여튼 정말 다(多)세포가 아닌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유치하다고, 뭔 영화가 이렇냐고, 말하는 게뭐냐고들 그러는데..
뭐 모르는 건 둘째치고,
모욕을 하지 말자.
이해 못한 단세포는 괜찮지만, 이해못한다고 무시하고 욕하는 단세포는 좀 수치스럽다.
나 본인... 이 영화 좋다고 평 한번 올렸다가 타 사이트에서 완전 개 알바 취급 당하는 사람이다..
나는 정말이지 화가 날만큼 모욕적이었다.
일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 라는 말까지 올라왔다.
나는 정말이지 알바 따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계 알바라는 말은 어쩌면 소수의 취향을 무시해버리는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탄생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튼, 다수가 재미없게 봤다고 소수의 의견을 무슨 개똥 밟듯이 밟아버리는 한국 문화의
태세가 역겹다.
뭐, 어쩔 수 없다.
획일적 주입적 교육의 산물일 것이니....
대체로 이 영화를 맹비난하는 글들 가운데, 이 영화를 분석해서 비난하는 글은 한번도 못봤다.
근거없이 무작정 엄청난 욕들을 날리면서
소수의 좋아하는 사람들을 개취급하다니;;;;;
여튼,
이런 개같은 단세포적 세상을 비웃는 영화가 바로 <다세포 소녀>이다.
(욕이 여럿 들어간 것 죄송합니다....ㅠㅠ)
결론적으로 영화<다세포소녀>는 단세포 세상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즐겁고 착한 자신만의 다세포 세상을 제시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모든 금기와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발칙한 영화인데다가,
그 주인공들이 10대 고등학생들이다.
고등학생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억압받고 금기로 가득찬 시기..
그 시기에 무쓸모 고등학교 속 무종교 다세포 소년 소녀들은 '왜 안돼? '안 되는 게 어딨어?'를 반문하며
자신만의 즐거운 세상을 창조한다.
그 세상은 마냥 발칙하고 즐거운 듯 하지만
단세포적 세상을 비웃는 수많은 코드들이 담겨있다.
가장 읽기 쉬운 코드는 이무기가 제공하는 '인스탄트 모범생 칩'
학생들은 그저 조신하게 공부만 열심히 해야 된다는 한국 교육계를 향한 비판.
( 뭐 좀 진부하지만... 그 교육은 아무리 비판해도 모자람이 없다.. 지금 단세포적 사회는 교육이 만들었으니..)
하지만 성적 코드와 결부된 모범생 칩은 또다른 풍자를 하고 있다.
즉, 그 칩은 여학생들에게만 삽입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들을 움직이는 건 여자라는 것.
여학생들이 제어된다면 남학생들은 자연히 제어된다는 재미나는 풍자다.
게다가 정숙, 조신 따위는 늘 여학생들에게만 강조되어졌던 단어들이니...ㅠㅠ
게다가 계급차이와 소외된 특별한 자들에 대한 풍자도 보인다.
테리,우스와 안소니, 이 세명의 부자아이들은 가난한 자들의 인생을 비웃고 무시한다.
심지어 눈이 하나이거나 여장 남자라는 것도 다 '가난'과 결부하여 무시한다.
어린 학생들의 사회에도 계급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계급차이는 능력이나 돈보다는 사실 '철없음'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의 화합은 쉽지 않다.
비록 안소니가 두눈박이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인터넷에 올라온 동성애에 대한 맹비난들을 비웃더라도,
외눈박이가 "이게 현실이야"를 외치며 틀어준 포르노에 안소니는 바로 사랑을 접어버린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역시 비록 섹시한 춤으로 안소니의 관심을 끌지만,
가난 속에 풍덩 빠졌다 나온 안소니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졸업 때 자신도 가난을 등에 업게 되서야 그들의 화합이 이루어진다.
남과 다르게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안다는
학교 유일무이 숫총각 외눈박이의 말은 희안하게도 다세포 소녀를 재밌게 본 나의 말을 대변해준다 ;;
실제로 그저 정신적인 우정관계에 불과한,
아니 아주 돈독한 정신적 친구사이인 흔들녀와 사장의 관계도
세상 사람들에겐 파렴치한 원조교제일 뿐이다.
아무리 외쳐대도 세상은 그렇게 굳게 믿어버린다.
세상은 단세포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재밌게 봤다고 쓰는 걸 알바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처럼
영화는 간혹 대놓고 뻔한 장르적 수법들을 내놓기도 하는데,
영화는 그때마다 스스로도 비웃는다.
"역시 인생은 드라마야...."
예이츠(와 그의 시)를 엉덩이로 뭉개버리는 감독의 취향과 어울리는 '다세포 세계'가 훌륭한 이유는 단세포 세상을 비웃는 것을 넘어서 일종의 유토피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매질을 자청할 때 교사는 굳이 바지를 내린다.
내린 바지 위로 드러나는 야릇한 팬티.
학생들은 일제히 카메라 폰을 꺼내들고 교사의 엉덩이를 찍을 뿐
교사의 야릇한 취향을 비난하거나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다세포 취향은 사회적 발언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나 조폭 보스 같은 원조교제의 수요자까지 너그럽게 포용하고 그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원조 교제 나가는 가난한 학생을 쓰레기, 걸레 취급 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얽힌 아버지와 아들의 성적 욕망을 함께 껴안는다.
또 학생들이 놀랍도록 일사불란하게 데모를 일으키는 순간이 있다.
교장의 몸에 숨어든 '이무기'가 정체성을 빼앗아 가버릴 때이다.
그런데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학생들이 쏘아대는 음풍, 양풍 신공이 오히려 이무기의 오랜 소원을 이뤄주고
구원해준다.
웬만한 음지를 모조리 양지로 바꿔내는 것,
이것이 다세포 취향이 가진 사회적 효능이자
다세포 소녀가 제안하는 열린 세상이다.
모든 사람과 상황을 열린 마음으로 인간적으로 포용하자는 것
이다.
정말이지 소수의 의견은 무참히 짓밟고 알바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지금 세태에 필요한 가치관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오긴 글른 것 같다.
단세포들은 알아듣지도 못한다...
영화의 이면을 읽어내야 하는 게 바로 <다세포 소녀>다.
단적으로 선생이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매질을 자청하는 장면을 보자.
학생들은 매질 사이사이에 안타까운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볼 수 없는 이면, 즉 칠판으로 향한 선생의 얼굴은 희열과 쾌락으로 젖어들어간다.
그 이면을 보자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
그래도 단점도 많았다.
영화가 발랑 까질 꺼면 갈때까지 갈 것이지,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탓에
뒤로 갈수록 파괴력은 떨어지고, 뒷심이 딸린다.
발칙한 세상의 이면에는 수많은 해석할만한 텍스트가 존재한다.
영화의 엽기 코드 속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그저 취향의 엽기로 끝내기엔 난감할 정도로 <다세포 소녀>는 많은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의 쾌락주의를 조소하는 하이틴 영화라니!!
한국영화의 영역을 또 한 뼘 넓혀준 다세포 소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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