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착한 영화는 조금 식상하다. 착한 영화에 대한 뿌듯함은 현실의 치졸함 앞에서 가볍게 뭉개져 버리니까. 그래서 착한 영화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의 감동을 현실로 길게 끌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작년 한해의 국내 박스오피스는 그런 현실을 가볍게 코웃음쳤다. 작년 대박을 낸 국산 영화-일단 '왕의 남자'는 논외로 하고-의 선두에 있는 두 영화가 그 무시당하던 착한 영화였다는 것. '말아톤'과 '웰컴 투 동막골'의 비약적인 흥행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선한 감성이 대중에게 파고들 여지가 증명된 것은 어쩌면 관객이 살아가는 냉정한 현실과 배우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간의 지독한 괴리감보다는 잊고 있던 감성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를 관객들이 본격적으로 표명한 것이리라.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독하게 냉정한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음지에서 선을 행하는 이들이 알게모르게 많을 뿐. 다만 표면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은 선보다는 악이 용이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빈도에서 악이 선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고 그만큼 현실에 대한 그늘이 더 크게 느껴질 따름인 것이다.
사실 영화가 현실보다 아름다운 것은 미화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범죄자들은 손가락질 받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들은 주목받는다. 그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시선의 깊이가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범죄자의 범죄행각의 결과만을 주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도둑놈은 도둑놈이상의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도둑놈 그 자체로 시작해서 그 자체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도둑놈으로 시작해도 도둑놈 이면의 인간이 등장한다. 내면의 생각과 일상적인 사연이 줄줄이 엮어지며 도둑놈 이전의 인간적인 냄새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주인공의 범죄행각에 대한 동정심을 확보하고 그 자체를 바탕으로 관객의 감정적 시야의 운신폭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일단 코믹함 자체를 들이밀고 그 밑바닥에 깔린 순수함의 정서를 은밀하게 흘려넣는다. 도굴꾼 김대출(정재영 역)의 범죄행각으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그 이후부터는 그의 도굴자체의 목적보다는 그의 도굴이 지닌 사연에 집중한다. 그의 행각이 주된 스토리가 아닌 그의 사연이 주된 스토리가 된다는 것. 말 그대로 사건보다는 인간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이며 그만큼 휴머니즘적인 감동을 거두고 싶어하는 눈치다.
사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전형적인 감동은 대충 이런 영화이지 싶을 따름이지만 반색할만큼 영화가 치졸하진 않다. 그것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순수함의 묘사가 나름대로 적절했음이다.
영화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했다면 눈살 찌푸릴 법했겠지만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순수함의 극대화로 연결된다. 순수함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동심이다. 이 영화는 시점 자체를 동심안에 배치함으로써 그러한 기본 공식을 적극활용했고 그 활용은 단순한 이용가치 이상의 진솔함이 묻어난다. 인간과 인간간의 신뢰감과 한 귀퉁이가 망가진 가족애와 불행한 과거의 상처를 지닌 인간적인 상념들이 뭉뚱그려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구실점의 실마리를 찾는다. 또한 대출의 구수한 사투리만큼이나 순박한 영화의 웃음은 슬픔을 환기시켜 적당한 감동으로 빚어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허전함은 가릴 수 없다. 비극적인 색채를 띠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감정선에 슬픔을 응집하여 감동적인 색채를 좀 더 진하게 우려내고자 했음이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무난함의 균형을 깨뜨리는 듯 했고 결과론적으로는 잔잔하게 스며들던 감정적 공감대가 오히려 과잉스럽게 우겨대는 부담감으로 변모하게 된다. 또한 악역들의 비중감이 다소 쳐지는 것은 단순하게 선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된 악의 연출을 의심하게 만든다. 결말의 여운은 감동적인 잔상일수도 있지만 급작스럽게 결말로 치닿는 이야기의 부실한 끝맺음이 기인한 허술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순수함은 이 영화를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만든다. 적어도 이 영화의 순박함에 대한 호감도는 거짓스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은 적어도 가식적인 웃음과 함께 저울질할만한 것은 아니니까. 영화가 남기는 온기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이유로 남는다.
투박하지만 순박한 남자 정재영의 착한 남자 캐릭터 릴레이 계보는 아마도 이 영화 이후로 잠시 멈출 것만 같다. 하나의 캐릭터에 재미를 붙인 것은 아닌지 싶은 우려는 차기작인 '거룩한 계보'로 인해 불필요해졌다. 어쨌든 그의 사투리는 구수하고 그의 촌놈연기는 순박한 웃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골목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은 오늘날 아이들에게는 생소할까? 요즘 놀이터에는 애들이 없다. 요즘 아이들은 두꺼비집을 짓는 것보다는 온라인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대가 변하니 아이들의 놀이 문화도 변하는 것이겠지만 단지 문화의 변화가 아닌 아이들의 순수함 그 자체가 변질되어감에 대한 서글픈 단상이 끼어드는 것은 쓸 때 없는 기우일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 개인만의 사족일지 궁금하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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