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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 어른이 되다. 시티즌 독
smire0701 2006-03-07 오전 9:29:47 1087   [1]
2006.02.21 명동 CQN 시사회

 

 

<주>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십시오

 

 

 

'실어증'(aphasia)이라는 병이 있다.

흔히 이 병을 들어본 사람들은 말을 못하게 되는 병이라고 단순히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병의 증상은 다양하다. 그중의 한 증상이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이야기를 할때는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엉뚱한 단어로 대치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바다'를 이야기 하려고 말을 하지만 입에서는 그 비슷한 '바람'같은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단어를 이야기 하면서도 자신은 제대로 된 단어를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강한 색감의 대비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과 기묘한 대사로 인한 황망함이었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가뜩이나 생소한 태국어도 적응하기 힘든 터에,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도 뭔가 껄끄럽다. 할리우드 영화와 근간 한국 웰메이드 영화의 매끈한 방식에 익숙한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부산국제영화제로 한국에 처음 선보였다는 것도 조금은 경계심을 만든다. 뭔가 그닥 재미있는 영화는 아닐것 같다는, 섣부른 짐작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은 '팟'(마하스무트 분야락)이 공장에서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사라진다. (사실 처음 공장에서 '팟'의 손가락이 잘리는 장면을 보면서, 어설픈 상징과 물질문화 비판같은 흔한 주제를 잡다하게 밀어넣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

 

영화는 아주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관객을 자기 세계로 빨아들인다. 처음에는 그 뻔뻔함이 너무 황당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관객들은 곧 그 세계의 언어에 적응해 나가게 된다.

 

'팟'과 '진'(상통 켓우통)은 꼬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꼬리'라는 것은 대단한 사람들만 가지는 것이다. '꼬리'에 대한 동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꼬리가 없는 것보다 더 슬픈것은 꿈이 없는 것이다.

'진'의 하얀책은 그녀의 꿈이다.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책은 읽을수도 이해할 수도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지만, '진'이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하얀책'으로 자신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고 추진해나가는 '진'에 비해 '팟'은 그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는 그녀의 '꿈'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 모든것을 사랑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기억하는가?

꿈이란 것을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그 시절의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도,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꿈'을 가지고 차근차근 시간을 지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냐 하면, 필자는 후자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당시 그 '열정의 대상'이라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의 그것은 내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눈먼 사람같았다.

나의 '하얀책'은 세상 무엇보다도 대단한 무엇이었다. '꼬리'를 가진 어른들이 대단해 보였고, 그들은 분명 자신만의 '하얀책'으로 '꼬리'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조금 나이를 먹어 머리가 크고 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깨닫는다. 사실 내가 믿고 있던 그 '하얀책'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하얀책'이 나를 어떤 일들을 하게 만들었건 그 결과물 또한 우스꽝스러운 어린 시절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른들이란 꿈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이라는 걸, 어쩌면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꼬리를 갖게 된다.

이제 꼬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 신기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뒤쳐진 이들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 순수한 세계에 남아있는 조금은 부러운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하얀책'을 따라 플라스틱 산을 쌓았던 '진'도 꼬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진'을 사랑하는 '팟'은 그녀를 사랑하기에 '꼬리가 없는 특별한 한사람'에서 꼬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팟'이 비록 꼬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었지만, 누가 그를 불행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화려한 색감의 동화이다.

동화는 항상 따듯한 해피앤딩이다. 하지만 이 동화를 그저 평범하다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 동화가 평범함조차 따스히 감싸안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확신이 없더라도, 산을 만들 정도로 대단한 무언가를 해내는 열정과 특별함이 있던 소녀가 있었다. 믿을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것,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꿈이 없어도 사랑이 있던 소년도 행복했다. 다른 색깔의 독특함을 가진 친구들이 있고, 그들을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또한 행복이다.  소년과 소녀는 행복했다.

 

그들은 꼬리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행복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되었지만, 환생하고 순환하는 인간의 역사속에서 조용히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 또한 아름답다. 그들은 더이상 산을 쌓지는 못하겠지만, 역사라는 산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높고 높은 산도, 사실은 플라스틱 병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루어 진 것이니까.

 

'진'이 만들었던 산은, 하얀책에 대한 그녀의 비약과 바보같은 믿음이 이루어낸 결과물이지만, 그것은 사랑의 명소가 된다. 가끔 대상에 대한 믿음이 어리석은 것일지라도, 열정은 그 자체로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는 젊음의 어리석음과 어른의 평범함과 열정의 결과물들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년, 소녀 어른이 되다.

그러나 동화는 해피앤딩이다.

삶은 어찌되었건 살아볼만큼 아름다운 것이다.

 

 

and so on

 

영화 내내 등장하는 귀엽고 톡톡튀는 주변인물들.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특히 담배피우는 곰돌이 통차이!!

그의 순정어린 사랑이 가슴 찡하다.

 

영화 시작을 알리던 주제가, 처음엔 좀 촌스러운듯 우스웠으나 영화끝날 무렵엔 어느새 중독되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흘러 나오는 주제가를 끝까지 듣지 않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

 

 

written by suyeun

www.cyworld.com/nightflight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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