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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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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6 오전 1:5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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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연애의 목적>은 제목부터가 참 아이러니하다. '연애'란 즉 사전적 의미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는 것', 영어로 'love', 말 그대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 거기에 구차한 목적이 달려 있다? 그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한없이 순수하고 순결한 이미지의 단어인 사랑에 이해타산적인 목적이 개입한다는 것부터가 뭔가 현대인들의 사랑 행태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보송보송하고 아기자기한 여타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이 <연애의 목적>이라는 제목은 아주 경직되어 있고 딱딱하며 다소 분석적인 구석도 보인다. 맞다. 이 영화는 연애라는 남녀 관계의 한 부분을 부드럽게, 하지만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도발적이면서도 편하고, 웃기다가도 찡해서 보기에는 부담없지만 영화가 안고 있는 메시지는 그저 무시하기에는 상당히 날카로워 찔릴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주인공 이유림(박해일)과 최홍(강혜정)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교사이다. 특히 홍은 27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비로소 교생실습을 나와 담임인 유림 아래에서 여러가지 가르침(?)을 전수받는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 담임이라는 작자, 눈빛이 심상치 않다.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사적인 관계로 발전하기에도 상당히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우리 같이 자요', '저기서 5분만 키스하고 가요', '남자친구랑 섹스하죠?' 등 남사스러운 멘트를 아낌없이 날리지 않는가. 그러나 이에 대한 홍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이미 지난날 대학 시절에 사랑에 대해 뼈아픈 기억을 소유하고 있는 바, 남자가 사랑한다는 둥 집적대는 것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기와 잘 거면 50만원을 내라는 둥 한편으로는 유림보다 한 술 더 뜨는 구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구나 자신에게 집적되는 유림은 여자친구까지 있다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응큼한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닿으면 즉시 감전사할 듯한 이들의 찌릿찌릿 백만볼트 심리전도 잠시. 본의 아게 홍이 유림의 작업에 넘어가 화끈한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때론 상당히 어색하다가도, 때론 상당히 다정다감하게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여러 태클을 맞이하게 되는데... 일단 이 영화가 흔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뭔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은 두 배우의 눈부신 연기다. 근래 로맨스물에서 이렇게 두 남녀 배우의 연기력 싸움이 대등한 수준에 있는 경우를 보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영화 속 유림과 홍의 사랑 줄다리기를 더욱 스릴 넘치게, 더욱 조마조마하게 만들어주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작업에 착수하는 유림 역을 연기한 박해일은 그야말로 대단한 변신이다. 수 편의 영화들에서 쌓아온 그만의 연약하고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는 이 영화 한편으로 단번에 깨져 버렸다. 이 영화에서 그는 단 한번도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능글능글한 미소를 날리며 작업 멘트를 툭툭 던지고, 때론 장난기 넘치는 악동마냥 만면에 심상치 않은 미소를 띄우기도 한다. 거기다 자기 감정에 심하게 솔직해서, 사람 가리지 않고 기분 나쁜 상태가 극에 달하면 그자리에서 십원짜리 욕을 내뱉는 등, 그동안 박해일이 보여주었던 절제되고 깔끔한 분위기의 연기와는 심하게 거리가 멀다. 그런데, 참 그 연기가 사실적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설마 저것이 실제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물론 아니겠지)이 들 정도로 박해일의 연기는 영화 속 유림의 캐릭터에 그대로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박해일의 연기가 대놓고 도발적이라면, 강혜정의 연기는 순진함 속의 도발이라 할 수 있겠다. 한번 사랑으로 인해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더 이상 마음의 문을 열기 힘들어 하는 홍의 모습은 강혜정이 내뱉는 냉랭하면서도 짤막짤막한 대사들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집적대는 유림에게 '혹시 마약하세요?', '전 돈받고 해요' 등의 다소 적나라한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날리는 모습을 통해 냉랭하고 도도한 이미지의 홍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냉랭한 톤의 대사는 한편으로는 한없이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섹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너 누나 첨 봤을 때부터 하고 싶었지'하는 유혹에 가까운 대사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날리는 모습은, 겉으로는 사랑에 약한 듯 보이면서도 속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르는 홍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러다가도 지난 상처때문에 다시금 눈물 흘리며 분노하는 모습에선 정말 나 자신도 홍의 저런 처지가 공감이 갈 만큼 대단히 사실적으로 분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전까지 범상치 않은 역할만 맡았던 강혜정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 범상치 않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에 몸을 사리다가도 어떨 땐 거침없이 빠져드는 모습을 훌륭히 소화했다. <올드보이>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녀가 보여준 적나라한 베드신은 역시 보통 여배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강렬하게 성장하고 있는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과연 연애(혹은 사랑)란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그저 즐겁자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심각하게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주고 받는 신성한 일이여야만 하는가.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두 주인공인 유림과 홍 역시 이런 대립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 유림은 현재 여자친구가 있지만 그런 사실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좋게 본 이성과 마음만 맞다면 언제든지 쿨하게 연애를 '즐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홍은 연애라는 걸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지 않는다. 유림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나서부터 밝히기만 하는 속물로 보곤 하는 그녀의 시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에게 연애란 마음 내킬 때마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오락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미 사랑때문에 심각하게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있는 그녀에게 연애란 상대방에게 거짓된 것이 없고 신뢰하며 상대방에게 충실해야 '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립된 사랑 방정식이 충돌하게 되면서 영화는 즐겁게 흘러가지만 한편으론 많은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사랑이란 누군가에게 거짓으로 인한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며, 이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상처를 겪게 되는 원인은 모두 진실되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홍의 옛사랑 역시 그랬고, 홍과 유림의 관계 역시 거짓된 마음으로 인해 돌아가며 상처를 받는다. 처음에는 유림의 변덕스런 태도가 홍에게 상처를 주다가도, 나중에는 홍의 생뚱맞은 태도 돌변으로 유림이 상처받듯, 영화는 흔히 보게 되는 남자는 상처 주고 여자는 상처 받는 식상한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랑때문에 상처 주는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으며, 때문에 어제 상처를 준 사람이 내일은 되려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유림과 홍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지만, 이는 단지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적나라했던 것이지 마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건 아니었다. 홍과 옛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너무 가리는 데 집중하다가 낭패를 봤고, 유림과 현 여자친구 역시 그랬으며, 홍과 유림은 서로 자신은 가리려고 하면서 상대방은 끊임없이 들추려 했다가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알몸 차림으로 사랑을 나누는 건 잘 하면서 정작 서로에 대한 마음은 너무 옷을 껴입으려고만 하는 게 아닌가 은근히 꼬집는다. 사랑을 나눌 때 옷을 훌러덩 벗듯이, 마음을 보일 때도 가리지 말고 아낌없이 벗으라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사랑은 마치 한 접시의 생선회와도 같다는 것이다.(영화에서도 근처에 좋은 횟집있다는 대사가 나왔었다.;;) 아낌없이 비늘을 벗은 생선들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그런 과정에서는 물론 다양한 삶의 표정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맵고 지독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막 접하는 싱그런 사랑에 만면에 달콤한 미소를 퍼뜨리기도 하고 신선한 활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의 '생선회'적인 면을 영화는 그대로 '생선회'처럼 보여준다. 적나라하게 연애에 관한 남녀의 심리를 까발리면서도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연애 싸움은 관객으로 하여금 달콤한 맛을 안겨주고, 그들이 날리는 대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며, 깔끔한 여운까지 남겨준다. 이처럼 영화 <연애의 목적>은 마치 한 접시 생선회처럼, 적나라하지만 신선하고, 깔끔한 뒷맛까지 있는 생선회같은 연애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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