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2004)
감독: 브래드 실버링
출연: 짐 캐리, 메릴 스트립, 에밀리 브라우닝, 리암 아킨, 주드 로(목소리)
개봉: 2005년 1월 27일
워너 브라더스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만들고, 뉴 라인 씨네마가 ‘반지의 제왕’으로 대박을 터뜨리자 드림웍스는 배가 아팠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800만부 이상 팔렸고 전세계 39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2700만명 이상의 독자를 보유한 레모니 스니켓의 소설은 군침도는 ‘물건’이었다. 3권까지의 내용을 축약한 영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짐 캐리가 ‘눈동자의 집’, ‘파충류의 방’, ‘눈물샘 호수의 비밀’에 등장하는 3인분의 악당 연기를 해냈다. 그의 전매특허인 속사포 같은 말과 뻔뻔함이 ‘재밌는’ 악당을 만들어냈다.
화재로 부모를 잃은 보들레어가(家)의 세 자매는 ‘겁나 먼 친척’ 올라프 백작의 집으로 보내진다. 발명의 달인 큰 딸 바이올렛, 읽기만 하면 다 외우는 둘째 클라우스, 강력한 이빨을 가진 막내 써니는 올라프에게 핍박을 받고 유산까지 뺏길 위기에 처한다. 유산 상속자인 아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올라프는 변장을 해가며 아이들을 때리고 가두고 절벽 위에 매달기까지 한다.
‘‥위험한 대결’은 짐 캐리를 위한 영화다. 각기 다른 분장과 목소리, 말투를 선사하며 1인 3역을 무척이나 강조한다. 그럼에도 객석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짐 캐리의 ‘천의 얼굴’은 이미 오래전부터 봐온 것이고, 영화의 축을 이루는 보들레어 아이들과 올라프 백작의 대결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들이 발휘하는 기지(奇智)도 새로울 것이 없다. 위기만 모면했지 악당에 대한 응징은 거의 없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어야 하는데 간지럼을 그친 정도로 만족하라는 식이다.
짐 캐리의 원맨쇼 ‘약발’을 높이기 위해 메릴 스트립과 더스틴 호프만이 망가져주고, 주드 로는 목소리(레모니 스니켓)를 헌사한다. 그러나 아직 짐 캐리는 웃음을 주는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린이를 폭행하고 감금하는 악한을 맡아도 ‘뭔가 웃기는 장면이 있겠지’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래도 웃고 싶니’라며 철저히 이빨을 보이지 않는 짐 캐리의 변신은 눈물겹지만 소설 속의 악당을 연기했다는 느낌보다 소설 위에 짐 캐리를 덧붙인 것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제목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짐 캐리의 위험한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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