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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 소개되는 영국영화의 약진은 놀랍기만하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최근의 빌리 엘리어트라는 수작을 선보인 영국 영화는 "브랜단 앤 트루디(When Brandan met Trudy)"라는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 맥라이언표 헐리웃 로맨틱 코메디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내내 자아내는 웃음과, 헐리웃 영화에서는 보기힘든, 그 영화 뒷편에 살짝 감추어둔 메시지는 유럽, 특히 영국영화로서의 헐리웃표 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영화였다.
브랜단이란 이름이 갖는 용기라는 것은 "무식하고 분위기 파악못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용기인것이다. 그러니 친구들 모임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선생들에게 왕따당해도 왕따라는 것조차 모르고 사는 것이 가능할것이니 말이다. 트루디의 정직. 그녀의 직업은 양상군자, 즉 도둑이다. 아주 젊고 매력적인 환상적인 미모의 도둑이다. 도둑의 이름=정직. 첫 만남에서 몬테소리 교사라고 거짓말하고 밤마다 일나가면서 자신의 동거남인 브랜단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여자.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브랜단.
이렇게 양 극단의 사람들이 만나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흔히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바가 없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코미디의 요소는 "맥라이언표 로맨틱 코메디"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나 혹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노팅힐'같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국 영화에서 느껴지는 헐리웃 영화와는 다른 화면 시선과 표현력까지 고려하면 그 느낌은 더욱 달라진다.
브랜단은 트루디를 만나서 변한다. 컴퓨터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막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시대에 덜떨어진 교사 브랜단의 운명적 사랑이 왜 하필 도둑일까?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브랜단은 트루디에게 오히려 자기 학교에 새로 들어온 컴퓨터를 훔치자고 제안한다. 왜 그는 그렇게 타락하는 것일까?
그의 성격적 변화는 트루디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변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도둑질을 제안할 정도까지의 타락을 보여주지만, 그는 여전히 노래는 찬송가만 부를줄 알며, 무료하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늘 하던대로 영화속 한 장면처럼 영화 주인공을 흉내내는 모습을 따라하는 모습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일상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타락하는 그의 모습. 그것은 현대 사회, 우리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더러운일이 많아도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을 위해서 직장을 때려치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둑질에 망을 봐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쁜 행동을 말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막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 컴퓨터를 도둑질하려다 실패하고 옥상으로 도망치다 브랜단 혼자만 건너편 건물의 옥상 난간에 매달리게 되었을때, 브랜단은 어떻게 해서든 트루디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저 자수해서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만을 볼 수 밖에 없는 브랜단의 모습. 2년형을 언도받은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모습.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지만, 그 사람의 능력밖의 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일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브랜단의 모습은 우리 대부분의 모습과 비슷한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영화를 단순히 로맨틱 코메디 만으로 볼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어찌되었건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특히, 영화 패러디를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극장안을 거의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은 감독의 "엔딩 서비스"는 영화보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은 꼭 놓치지 말고 보기를 권하면서, 특수효과만 화려한 내용빈약하고 긴 블럭버스터보다는 훨씬 즐거운 영화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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